-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지 않을까?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 가능할까? 사진:픽사베이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 가능할까?

애초에 딸과 아들이 아니니, 딸 같은 또는 아들 같은, 며느리 또는 사위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큰 기대만큼의 큰 실망감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진짜 딸처럼, 아들처럼 시어머니 또는 장모님을 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미있는 일화를 들어보자.

선미는 요즘 유행하는 감기에 걸려,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산다. 여느 때처럼 출근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고, 여느 때처럼 직장상사에게 깨진다.  사진:픽사베이

선미는 요즘 유행하는 감기에 걸려,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산다. 여느 때처럼 출근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고, 여느 때처럼 직장상사에게 깨진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집에는 아픈 내가 걱정이 되어 친정엄마가 와 계셨고, 먼저 퇴근한 신랑은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다. 물론 엄마가 김서방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쉬라고 했고, 김서방도 이내 알았노라며 쉬고 있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딸이 친정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유추해 보도록 하자.

엄마1. 엄마 힘든데 뭐 하러 와서 이렇게 해줘~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나도 같이 준비하자. (보통엄마들은 딸도 일하고 와서 힘들 테니 같이 쉬고 있으라고 한다. 같이 준비하든지 쉬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엄마2. 나 너무 아파, 너무 힘들어, 오늘 이부장님이 또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 있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가르쳐주던가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보고할 때마다 욕 먹으니까 너무 힘들다. 오늘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고 몸도 낫고 기분도 얼른 나아야지! (우리 딸 우쭈쭈 위로 해주면서, 쉬고 있으라고 한다. 쉰다.)

엄마2. 엄마가 해주는 밥 너무너무 먹고 싶었어, 오늘 진짜 보고 싶었어 엄마 (오구오구 내새끼 얼마나 힘들었냐며 쉬고 있으라고 한다. 쉰다.)

엄마4. 나 너무 아프고 힘들어, 나 좀 누워 있을게 엄마. (얼른 들어가 쉬라며, 아픈 딸을 걱정한다. 쉰다.)

엄마5. 나 너무 힘든데 뭐 하러 왔어, 그냥 쉬고 싶었단 말이야. 오지 말라고 했잖아.(싸가지 없는 것 입에서 험한 말이 나오지만, 애틋하고 걱정되어 쉬라고 한다. 쉰다.)

대략 이 다섯 가지로 생각해 봤을 때, “엄마”를 시어머니인 “어머니”로 고쳐서 이야기 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1.어머니~ 어머니 힘든데 뭐 하러 와서 이렇게 하세요~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요, 저도 같이 준비할게요. (시어머니를 아무리 엄마같이 생각한다고 해도, 엄마한테 말하는 것처럼 반말은 아마 안 나올 것 같고, 반말로 말한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시어머니입장에서도 아이고 우리 며느리 진짜 딸같이 살갑게 구네, 라고 생각을 안 하실 것 같다.)

2,3,4,5 번을 굳이 일일이 나열하여 적지 않아도, 시어머니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며느리는 어떤 행동을 할지 바로 예측이 가능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관계를 보면, 그 어떤 관계보다도 이해의 폭이 넓고 생각의 깊이가 깊다. 이것은 같은 핏줄에 의해 유전적으로 연결이 된 인연이라는 '혈연'과, 함께 나고 자라며 희노애락의 추억을 만들어간 '세월'이 만나, 그 어떤 관계의 힘 보다 더 단단하고 강하고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부관계, 장서관계 이런 관계들은 '혈연'에도 속하지 않으며, '세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세월'뿐이다. 사진:픽사베잉

하지만 고부관계, 장서관계 이런 관계들은 '혈연'에도 속하지 않으며, '세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세월'뿐이지만 우리는 이 '세월'에 그렇게도 많은 기대를 갖는다. 배우자와 인연이 닿아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부모님은 내가 원하던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그 배우자로 인해 나와 굉장히 가까운 관계가 형성이 된다. 이 말인 즉슨 내가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그들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고 이것이 핵심이다. 순간순간의 일들이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 그래서 고부갈등 장서갈등은 한번에 오지 않는다. 계속 계속 누적이 되고, 계속 계속 쌓여만 간다.

이렇게 '세월'이 계속 누적이 되고 쌓이다 보면 그때서야 비로소, 서로에게 누군가의 엄마처럼 또는 딸처럼, 아들처럼 이라는 수식어가 감히 붙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수식어가 붙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속에는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 갈등들이 있었을 때, 서로에게 깊은 상처가 되지 않을 선에서, 서로의 자존감을 다치게 하지 않을 선에서, 서로의 감정을 존중할 수 있는 선에서 원만히 해결해 왔을 것이다. 이게 바로 “세월”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서로의 배려와 존중 그리고 이해가 함께한다.

앞서 선미를 예로 들은 것처럼 그 상황에서 며느리가 나에게 1,2,3,4,5 의 말을 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저녁을 해 주고 싶다는 “존중”, 쉬게 해주고 싶다는 “배려”,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해”까지, 이 모든 마음이 있어야 정말 딸 같은 며느리가 가능 한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아들을 기대한다는 것은 결국은 그 기대가 실망이 되어 또는 절망이 되어 내가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이야기를 하자면,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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