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C 할아버지의 실패 극복 이야기

전설의 시작

KFC 매장에 가면 볼 수 있는 하얀 머리에 흰 수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이 할아버지는 KFC의 창업자 커널 샌더스다. 그의 본명은 할랜드 데이비드 샌더스다. 1935년 45세에 켄터키 주의 명예를 빛낸 공적으로 주지사로부터 '커널colonel‘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커널 샌더스로 불리게 됐다. 

커널 샌더스가 만든 KFC. 출처:픽사베이
커널 샌더스가 만든 KFC. 출처:픽사베이

샌더스는 1890년 인디애나 주 헨리빌에서 삼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6살에 아버지를 잃은 뒤 어린 두 동생을 돌보면서 힘들게 살았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워야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동생들을 돌봤다. 10살부터 농장 일꾼을 시작으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일을 해야 했다. 

12살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디애나 주 그린우드로 옮긴 샌더스는 7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그의 어머니는 재혼한 남편의 폭력에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샌더스는 13세에 집을 나오게 되고 페인트칠과 농장 보조원으로 일했다. 1906년 16세 밖에 되지 않던 그는 기록부를 위조하여 군대에 입대하고 쿠바에서 군복무를 했다. 

샌더스는 1907년 군대에서 명예 전역을 하고 쿠바에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철도 보수원, 보험사 영업, 페리보트 회사일, 아세틸렌 램프 만드는 일, 타이어 영업 같은 그야말로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1924년 타이어 영업을 하며 친분을 맺었던 켄터키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Co.사의 도움으로 작은 주유소를 하나 차렸다. 당시는 자동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라 주유소의 전망은 매우 밝았다. 

1929년 대공황이 오면서 주유소 영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결국 샌더스는 39살에 모든 돈을 날렸다. 다행히 그의 친절한 영업 서비스를 지켜본 쉘 오일Shell Oil Co.사의 도움으로 1930년 켄터키 주 남서부 코빈에서 다시 작은 주유소를 시작했다. 주유소를 운영하던 샌더스는 많은 여행자들이 운전하는 중에는 배가 고파도 음식을 먹을 식당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에 아이디어를 내서 주유소 구석에 한 개의 테이블과 여섯 개의 의자를 마련해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생들을 돌보며 쌓은 요리 실력으로 닭튀김, 햄과 스테이크를 판매했다. 그의 작은 식당은 청결한 매장 관리와 맛있는 요리로 금방 유명해졌다. 

친절한 주유소와 샌더스 카페는 켄터키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1935년 45세의 샌더스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널'이라는 명예 대령의 칭호를 받았다. 이후 그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여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모텔을 만들었고 사업을 더 확장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 전역에 자동차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자 여행객은 급격히 줄었다. 샌더스의 모텔과 레스토랑은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1950년에는 25번 국도를 우회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손님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졌다. 샌더스는 적자를 내면서도 사업을 유지하며 버티었지만 결국 1955년 모든 사업이 망해버렸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 전역에 자동차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됐다. 출처:픽사베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국 전역에 자동차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됐다. 출처:픽사베이

샌더스에게 남은 것은 매월 받을 수 있는 105달러의 연금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65세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가 직접 부딪혔다. 여러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도록 주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프라이드치킨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채택하신다면 사업은 틀림없이 번창할 것입니다. 저는 그 증가한 매출액에서 일부를 받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놓고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먼저 방문했던 음식점의 거절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세심하게 자신의 말투를 고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른 음식점을 찾아가 주인을 설득했다. 

샌더스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1,008번이나 거절당한 후에 처음으로 '당신의 제안에 동의합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낡고 오래된 할아버지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피곤하면 옷을 입은 채 뒷좌석에 누워 잠을 잤다. 차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샌더스는 1,008번의 거절을 당하는데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 KFC 프랜차이즈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캐나다, 영국, 멕시코 같은 해외로도 진출했다. 1963년에는 북미 지역에서만 프랜차이즈 지점 수가 600개를 돌파했다. 현재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20,000여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실패가 전설을 만들다

커널 샌더스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노동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 돈이 없어서 16세에 군대를 가야 했고,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했다. 잘 되던 사업도 여러 번 실패했다. 필자도 20년 전 아버지가 간암으로 일을 못하시고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워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져서 장례 치를 돈도 없었다. 어릴 때 돈이 없어서 불편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인이 돼서 실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갖기 어려운 것이다. 어른이 되고 또 실패를 하면 후회와 후회를 거듭하고 땅을 파고 파고 또 파서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돼.’라는 생각까지 한다. 이런 생각까지 하면 두 번 다시 사업을 하거나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샌더스는 달랐다. 극도로 어려운 어린 시절과 사업에 실패를 경험하고도 65세에 다시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봐라. 65세에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65세의 나이는 벌어놓은 돈으로 조용히 살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삶이다. 샌더스는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에서 살면서 2년 동안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는 1,008번의 실패를 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말이 1,008번이지 사람이 10번만 거절당해도 미칠 수 있다. 욕을 하면서 당장 그만 둘 것이다. 그러나 샌더스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에게 쌓여지는 실패를 모두 무시하고 오직 자신이 세운 계획을 이루기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결국 그의 실패는 KFC라는 기업을 탄생시켰고 전 세계적인 거대 기업이 됐다. 

샌더스는 지금까지도 프랜차이즈 업계의 전설이다. 아마 앞으로도 후대에 전설로 남을 것이고, KFC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의 실패는 사람들에게 계속 전해지고 빛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를 힘으로 바꾸면 전설이 된다. 당신도 전설이 될 수 있다. 
 

<출처>

(*) 《실패에도 감사하라》 루어무 | 신기봉 역 | 해피맵북스 (22쪽)

(**) 《끈기로 만들어낸 닭튀김의 대명사 KFC, 커널 샌더스》 네이버 블로그 혼창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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