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의 전략/사진제공: pixabay
보험설계사의 전략/사진제공: pixabay

언젠가 보험설계사와 몇 마디 나눈 후로 그 보험설계사가 집요하 게 접근하는 것을 보고 보험설계사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 다. 보험설계사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왼쪽으로 오면 오 른쪽으로 빠져나가고, 오른쪽으로 오면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약 1 년간은 이런 식으로 보험설계사를 피해 다녔다. 물론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보험설계사의 집요함이 싫었던 것이다.

보험설계사는 올 때마다 내 책상 위에 좋은 글이 담긴 종이를 한 장 놓아두곤 나간다.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종이만 놓고 나간다. 1주일에 한 번씩은 방문하여 어김없이 책상 위에 좋은 글을 두고 나간다. 종이에는 좋은 글과 함께 설계사의 성명과 핸드폰 번호만 적혀있다.

처음에는 말도 걸지 않고 왜 종이만 놓고 가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략이라는 것을 알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1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보게 되고 한 번 두 번 만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낯이 익게 된다. 그러다 누군가가 관심이 있어서 말을 걸면 생년월일과 가족사항을 알려달라고 하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주 겠다고 한다. 꼭 가입하라는 것은 아니까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다.

생년월일과 가족사항 등 기본적인 자료를 알려주면 설계서를 가 지고 온다. 몇 년 후에 닥칠 일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해 둘 필요 가 있다는 것이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해도 보험설계사는 사무실에 올 때마다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 나가는 말로 한다. 가입할 때까지 집요하게 접근한다.

나도 여기에 걸려 한 건의 보험을 가입하게 되었고 그 후에는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으로 찾아가 집사람을 만난다. 조그마 한 선물을 하나 들고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들렸다고 하면서. 가끔 문자 메시지를 발송하기도 한다. 그러더니 집사람이 본인과 나, 아이들의 보험을 합쳐 5건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하고 말았다.

내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려고 1년 동안 보험설계사를 피해 다 녔고,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보험가입 해달라고 부탁을 해도 보험 에 가입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조그마한 것으로 한 건을 가입했었는데 이제 가입한 것이 6건이나 되어 매월 지급되는 보험료도 이제 제법 된다.

보험설계사들이 보험계약 실적 1건을 올리기 위해서 수많은 발품 을 팔고 다니면서 얼굴을 익히고, 이미지 관리하면서 결국은 보험 계약 건수를 올리는 것을 보고 우리가 하는 일이 공무인데 굳이 세 일즈맨처럼 발로 뛰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괜히 트집을 잡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공 무원을 괴롭히는 민원인도 있다.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서로 알게 모르게 정도 든다. 자주 만나 다 보면 얼굴을 안다는 것 때문에 소주 한 잔 함께 마셨다는 이유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청계천 복원사업을 추진 하면서 매일 반대하는 주민들을 만나러 다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 었다.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좋은 이야기만 오고가지는 않 았을 것이다.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이 야기를 다하지 못하고 참았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 해하게 되고 문제가 풀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왕1통 희망마을 사업 신청을 할 때 조그마한 사업이니까 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추진하려니 마을에는 대부분 노인 들만 있고 일할 사람이 없었다. 통장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 니어서 통장만을 다그쳐서 될 일도 아니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전 화를 하고 가끔 방문하여 함께 궂은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몇 달 동안 일의 진척이 별로 없었다. 그러더니 동장이 동네를 위해서 관 심을 갖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무더운 8월이지만 저마다 집에서 연장을 가져오고 천막을 치고 하면서 한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저녁마다 나와서 나무의 껍질을 벗기 고, 나무를 깎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보험설계사가 보험계 약 1건을 성사하기 위해서 말없이 발품을 파는 것이 헛수고가 아니 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설계사가 만나자 마자 보험계약을 하자고 하면 보험계약이 쉽게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도 말은 해보지 않았지만 매 일 방문하여 좋은 글이 적힌 종이를 돌리며 얼굴을 익히고, 말없이 방문하여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좋은 글이 적힌 종이를 돌리며 성실하다는 무언의 신뢰를 쌓은 다음에야 비로소 접근하기 시작하 고 결국 보험계약을 성사시키는 그 전략이 공직사회에도 필요하다 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금방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 게 꾸준히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갈 생각이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세 번에 안 되면 네 번 계속 시도해 볼 것이다. 그 시간이 길게 걸릴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문제가 풀릴 것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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