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나눔회'를 만들며/사진:픽사베이
'거북이 나눔회'를 만들며/사진:픽사베이

사회복지계장을 할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 여자 동창생 몇 명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회 비를 모아 자신들이 먹고 마시는데 쓰지 않고 매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데 금년에는 내가 사회복지계장이니까 필요한 사람 에게 전달해달라며 300만 원을 가져왔다. 친구들의 좋은 뜻에 부 합되도록 대상자를 선정하고 함께 전달하자고 했더니 나를 믿는다 며 알아서 전달하라고 했다.

좋은사람들 모임은 회원이 10여 명의 여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데 나를 특별회원으로 받아주어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에 참여했다. 대부분의 모임이 먹고 마시거나 놀기 위해서 모임을 만든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 그런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2004년 8월경 우연히 시청 직원 몇 명과 ‘좋은 사람들’이라는 모 임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우리도 모인 사람들끼리 이웃돕기 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함께 있던 직원이 10여 명이었는데 10여 명이 한 달에 만 원 씩 내서 1년을 모아 한 번씩 누군가를 도와주자며 시작한 것이 ‘거 북이 나눔회’다.

당시 시장은 시장공약 사업인 1%복지재단 설립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추진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추진하기로 했다. 직원들에 게 전자문서시스템에 있는 메일 란을 통하여 참여의사가 있는 직원 은 자율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편지를 띄웠다.

처음에는 20여 명이 참여했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내부 전산망을 통하여 메일을 보냈더니 참여하는 직원들이 점차 늘어났다. 나중 에는 회원이 270여 명으로 늘어났고 월회비도 300만 원이 넘었다. 이 수입으로 우리 시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선정해서 도와주기로 하고 2004년 9월에 입금된 109만 원 중에 2명을 선정하여 80만 원 을 지원하는 것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지원금을 전달하면서 생색을 내기 위한 사진을 찍는다거나 표시를 내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순수하게 도와주자는 의도로 첫 번째로 도와주기로 한 대상에게 성 금을 전달하면서 사진촬영을 하지 않고 운영위원 몇 명이 가서 전달하고 돌아왔다.

사회복지과장이 나중에 1%복지재단이 설립되면 합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순수하게 시청직원들이 이웃을 돕는 모임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무슨 의도를 갖고 모임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 는 직원들도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추진자가 김운영 계장이기 때 문에 가입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 기를 들으니까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월 100만 원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100만 원이 넘으니까 더 많은 돈이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 중에는 이미 여 러 기관에 이웃돕기 후원금을 내고 있는 직원들도 많이 있었다. 어 떤 사람은 유니세프에, 어떤 사람은 관내 사회복지시설에, 어떤 사 람은 소년소녀 가장을 발굴하여 매월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남을 돕는데 쓰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급여에서 일부를 남을 돕는데 후원하고 있지만 많은 직원들 이 그런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웃돕기 모임인 ‘거북이 나눔회’를 만들면서부터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이 있다. 어떤 사 람에게는 필요한 돈이 우리 시청에 있는 회원 전체가 납부하는 회 비를 한 사람에게 다 도와주어도 모자란다. 그렇다고 해서 회비를 한 사람에게 다 사용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정말로 어려운 사람은 국민기초수급자로 책정되도록 도와주고 다른 도움의 방법이 있는 사람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와 주며 우리의 회비는 뜻있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회가 변하다보니 가족이라는 개념도 바뀌는 것 같다. 길을 잃 은 부모를 지문 조회하여 연고자인 자식을 찾아 자식에게 인계하려고 하면 자식이 부모를 인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식 은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부양의무자라는 말을 해가며 억지로 맡기고 나올 수 있지만 형제지간에는 부양의무자라는 관계가 성립 되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맡길 수도 없는 실정이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못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도 옛말인 듯싶다. 갓난아이를 몰래 버리고 가는 사 람도 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구라는 이유로 자식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라 고 한다. 그러니 삐뚤어지고 탈선하는 아이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자기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하는 원 인이 되기도 한다.

운영위원회에서 지원대상자를 결정하여 매화동에 거주하는 지원 대상자에게 돈을 전달하러 갔는데 남편이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데 목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끼워 음식을 넣어 주고 목 에 침이 고여 숨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30분마다 석션을 해주고 있 었다. 남편 옆에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몇 년을 간호했다는 여성을 보면서 참으로 대단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비를 1만원씩 내던 직원들이 더 내겠다고 하는 직원들이 늘어 나고 있다. 처음에는 회비를 받아 현금 지원하는 것만 하려고 했는 데 회원 중에 현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육체적으로 봉사활동도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한번 시도해 보자며 첫 사업으로 장애인 아동을 둔 부모가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자식과 떨어져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장애아동과 1박2일을 함께하며 식사 보조, 양치 보조, 취침 도와주기, 나들이 도와주기 등을 하는 데 장애아동 중에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는 아동들이 많이 있었다. 일찍 잠이 드는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새벽 2시는 되어야 자 는 아이도 있다. 잠을 자지 않으며 소리를 지르고 잠깐 눈을 붙이 려고 하면 일찍 잔 아이들이 깨우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장애인복지관으로 이동하여 다음 날인 토 요일 오후 3시까지 봉사활동을 하는데 봉사활동을 마치고 집에 들 어오면 무척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되고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을 설쳐 다음 날 일정에도 지장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해피 데이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거북이 나눔회’ 회원 13명 정도가 참여했었는데 대부분 한두 번 참여하고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것도 하나의 약속인데 약속은 지 키자며 몇 명에게 전화를 하여 억지로라도 몇 명을 참여하게 하여 함께 이동했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취침하게 해 놓고는 함께 봉사활 동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맥주를 사주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만들었 다. 그러다 보니까 몇 명은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기 시작했다.

힘든 봉사활동만 하지 말고 쉬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필 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료급식봉사, 빵 봉사, 학습지도봉사 등 의 프로그램을 추가로 만들었다. 그랬더니 참여하는 봉사자들이 늘 어났다. 활동을 하면서 활동내용을 수시로 보도자료로 제공하고 활 동사항을 수시로 행정전산망에 게시함으로써 미약한 활동이지만 직원들과 회원들이 알 수 있도록 했고,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했다.

‘거북이 나눔회’ 회장을 맡으며 수시로 시청직원들로 구성된 이웃 돕기 모임이 활동한 내용을 보도자료로 제공하면서 내 이름은 빼달 라고 했다. 어떤 기자는 회장의 이름을 빼면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기사를 쓰지 말라고 했다. 아마 회 장의 공적이나 홍보하려고 했다면 회원이 270명까지는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원 중에는 회비를 높여서 납부하는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시흥 시청에 근무하다가 퇴직을 하거나 도청이나 다른 시도로 전출한 다음에도 계속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도 있다. 전화를 하여 “왜 계속 회비를 납부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내가 회장으로 있는 한 계속 회비를 납부하겠단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보람도 느꼈 다. 묵묵히 지속적으로 활동하니까 지역사회에 ‘거북이 나눔회’ 활 동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지사 표창이나 시장표창 등 상장도 몇 차례 받았고, 시청공무원들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회원도 많이 늘어났고 총 수입액 4억 1,700만 원에서 3억 7,300원은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관내 불우이웃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봉사활동에도 1만 시간 이상 참여했다. 

언젠가는 승진대상자 면접을 하면서 내게 “‘거북이 나눔회’를 1% 복지재단에 합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이 있었다. “1%복지재단 은 나름대로의 기능과 역할이 있고, ‘거북이 나눔회’는 ‘거북이 나눔 회’ 나름대로의 역할과 기능이 있으니까 합치지 않는 것이 좋겠습 니다”하고 답변을 했다.

가뜩이나 승진에서 몇 번 누락되었던 나로서는 “합치겠습니다”하 면 승진하는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회원들 중에는 1%복지재단과 합 치면 1%복지재단에도 참여하지 않고, ‘거북이 나눔회’도 탈퇴하겠 다고 하는 회원도 있는 상황에서 회장이라고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사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만든 ‘거북이 나눔회’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단 몇 명만 남는 한이 있더라도 ‘거북이 나눔회’ 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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