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을 느꼈던 일 /사진:픽사베이
보람을 느꼈던 일 /사진:픽사베이

공직생활을 하면서 고급공무원을 지낸 것도 아니고 말단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누구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성질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상사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성질은 승진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불 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성질로 인하여 나름대로 보람을 갖게 했던 일도 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크지는 않지만 작은 보람을 가졌던 일이나 어 려움을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지난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뒤 돌아보게 됐다. 엊그제 공직생활을 시작한 것 같은데 공직을 마감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근무하면서 최 선을 다하려고 했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전임자가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새로운 부서로 이동 하면 일을 분석하여 보다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보 다 나은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려고 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그 118 원칙을 지켰더니 해결되더라 2부 공직생활의 보람과 아쉬움 119 동안 업무를 처리하면서 업무를 개선했던 일, 성과를 올렸던 일, 추진하면서 갈등을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때 로는 손해를 보는 일도 있었지만 결코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다. 동료 공무원이나 후배공무원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1년만 하려고 시작했던 공직생활이 벌써 33년이 지나갔다. 나름 대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활철학과 풀무원 생활을 하면서 원경선 선생님의 영향으로 내가 살아가야할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어떤 것이 나를 유혹해 오더라 도 원칙을 지키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되 었고, 나의 삶이 후배공무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 는 마음이다. 때로는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주저하기도 하면서 추진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때로는 힘들어 하며 공직생활을 접으려고 하기도 했고, 이직을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하면서 느끼게 된 것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 질로 인해 계속 일을 만들어 냄으로써 나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 을 많이 힘들게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평 없 이 따라주고 최선을 다해준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고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칙을 고수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 를 들었고, 때로는 시흥시 독일병정 1호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원 칙을 지켜왔다. 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속으로 갈등하고 망설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게 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때로는 어려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때로는 욕을 얻어먹지 않기 위해서, 때로는 악역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못 본 체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상사가 시키는 일을 그냥 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전임자가 단추를 잘못 끼운 행정을 바로 잡으면서 많이 시달림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회유를 받기도 했고, 때로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 일을 처리하면서 전임자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잘못된 것 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울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사무실에 출근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일을 다른 사 람에게 미루기는 싫었다. 이러한 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 람들은 내가 그런 일을 즐기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싸우고 욕을 얻어먹는 일을 누가 즐긴단 말인가. 다만 그 일이 내 앞에 있으니까 피하지 않고 처리해 나갈 뿐인데 그것을 보 고 즐긴다고 한다면 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장 내가 편해보자고, 승진해보자고,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전임 자가 잘못한 일을 그냥 모른 체하거나, 잘못된 일임을 알고도 윗사 람의 지시라고 무조건 따르는 일은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단추를 잘못 끼운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다시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바로 잡으려고 노력을 했 지만 아직까지도 완전하게 바로잡지 못했다. 옷을 입으며 한 번 잘 못 끼운 단추를 바로 끼우려면 이미 끼웠던 단추를 모두 풀어야 한 다. 옷에 있는 단추는 다시 풀어서 끼우면 되지만 잘못 저질러진 행정은 되돌리기 어렵다. 되돌리기가 어려운 만큼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전임자가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으로 서 비록 나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나로 인해 후임자들에게 더 이상 마음의 고통을 안겨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도 독일병정 1호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원칙을 지 키는 생활을 하며 보람을 느꼈던 일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 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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