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름이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도 이름이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미물도 동물도감이나 식물도감에 보면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건물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다리에도, 길에도, 요즘은 심지어 날짜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니 빼빼로 데이니 날짜에도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름은 누구에게나 아주 소중합니다. 이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최초의 선물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결단코 떠나지 않는 소유물입니다. 그런데 과학문명이 발전되면서 점점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해 불려 지지 않습니다. 번호로 대신하여서 번호인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름을 잃어 버린 것이 이 시대의 비극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자기의 양인 우리의 이름을 각각 불러 양의 우리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70마리가 넘는 양을 돌보는 목자라 하더라도, 목자는 그 양들의 이름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냥 양들의 숫자만 세어도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 목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양들에게 이름을 다 붙여놓고는 양떼가 우리에 들어오고 나갈 때에 꼭 그 이름을 부릅니다. 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릅니까? 그것은 양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가진 그 양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특징과 상태까지도 다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스럽게 양떼를 우리에서 이끌어내면서 다정하게 양의 이름을 불어준 그 목자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수많은 군중 가운데 파묻혀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창세기 16장과 21장에 보면 하갈은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하는 음성과 ‘하갈아!’하는 음성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갈은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일어설 수 있었고, 아들 이스마엘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갈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믿음의 후계자이고, 이스마엘은 버림받은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도 사랑하셔서 그가 고통 가운데 울부짖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불러지시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치기를 하던 목동 모세를 찾아가셔서 하나님께서 ‘모세야 모세야!’(출3:4)하고 부르셨습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던 삭개오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야!’(눅19:5)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열심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9:4)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그 음성을 듣고 사울이라는 청년은 바울로 변화되어 세계 복음화를 위해 일평생 헌신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무덤 속에 묻힌 나사로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요11:43)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고 자신을 부르시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도 나에게 눈길을 맞추며 사랑스럽게 나를 향하여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계십니까? 혹 우리 가운데는 ‘주님은 내 이름을 안 부르셔. 다른 사람의 이름은 부르실지 모르지만 내 이름은 한 번도 불러보신 적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늘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적에 엘리 제사장 아래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를 세 번이나 부르셨지만, 어린 사무엘은 그게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세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을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고, 사무엘에게 다시금 네 이름 부르는 소리가 나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말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내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양인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이름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삶의 형편에서든지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오늘도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며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영의 귀를 열어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용기 내어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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