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믿음은 문제를 극복하게 합니다 (창 12장 10-20),일산명성교회 문성욱목사
[MISSIONARY]믿음은 문제를 극복하게 합니다 (창 12장 10-20),일산명성교회 문성욱목사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목사
  • 승인 2018.11.2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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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달라져
사진:픽사베이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희망적인 말을 듣고, 예수 믿는 삶을 시작한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런데 복은커녕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기대하지 않았던 재앙마저 찾아와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 자체가 후회스럽게 느껴졌던 적은 없으십니까?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다고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함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그렇다면 약속의 땅에도 기근이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달라졌습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명령하셨고 또한 그 새로운 삶에 대한 축복과 보장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붙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왔습니다. 그 땅으로 오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란의 유혹 앞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고, 환영하는 이 없는 가나안 땅에서의 고독함과 황당함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견디어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약속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던 그 땅에는 포악하고 거친 가나안 사람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약속의 땅에는 기근까지 찾아 왔습니다. 이제는 생계를 이어갈 양식조차 없습니다. 오직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와 황량한 들판뿐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10절)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만났던 기근, 그것도 극심했던 기근, 우리가 이런 문제 앞에 이를 때에 참 당황 하게 됩니다. 잘 믿다가도 이러한 문제 앞에 이르게 되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다 막혀버립니다.

이러할 때 아브라함의 첫 행동은 일단 살고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의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브라함을 너무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생의 극심한 문제 앞에 이르렀을 때에 보통 사람들이 취하는 일반적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눈앞에 어려움이 닥치면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살 길부터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직면한 위기 앞에서 일단 살고 보자라는 생각을 갖는 순간 지금까지 잘 정립되고 지켜졌던 삶의 우선순위가 갑자기 흔들립니다.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하나님도 있고, 신앙도 있고, 교회도 있는 것이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11절에서 13절의 말씀이 아브라함의 그런 행동을 보여 줍니다.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이 말씀의 쉬운 뜻은 무엇입니까?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라도 일단 살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신은 살지 모르지만 아내 사래는 애굽 사람에게 붙들려가게 됩니다. 그래도 자신은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애걸하고 있습니다. 좀 치사한 행동입니다.

지금 이 아브라함의 모습은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못하는가” 라는 세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몸을 팔아도 좋고, 비겁해져도 좋고, 신의를 저버리고 배반하며 공동체를 어지럽혀도 좋고, 윤리와 도덕을 팔아서라도, 신앙과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라도 자신에게만 유익이 된다면 서슴없이 행동하는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의 모습은 오늘 어쩌면 우리들의 감추어진 뒷모습일 수 있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이 모양이 되었습니까? 갈대아 우르를 떠나 말씀을 붙들고 그 땅으로 간 그 장하던 모습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그 순간 놓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놓쳤을 때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두려움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묶여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붙들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는 연약한 자신 의 아내를 붙들고 살아보려고 매어 달립니다.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여러분, 우리에게도 아브라함 같은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좋은 것 같이 잘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에 정신없이 믿음 없는 자리에서 낙심하고 있는 나를 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저만큼 멀리 있고,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 사람을 붙들고 바라보며 의지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목사에게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어떤 고난도 참겠다고 결심하고도 그 아름다운 결심이 한 순간 사정없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사람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면 힘을 얻게 됩니다.

2절-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신앙의 삶을 살다가 정신을 잃고 헤매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그 문제를 하나님이 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17절)

하나님은 지금 누구에게 재앙을 내리고 계십니까? 바로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 일의 발단은 누구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래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부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면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고 바로가 화를 내면서 돌려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일차적인 잘못은 이들 부부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 부부는 가만 두고 바로와 그 집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결론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생활을 해 나가는 중에 우리들은 반드시 인생의 문제를 만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믿음을 방해하는 세상의 장애물들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합니까?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기근이라는 인생의 장애물을 만납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가지 보았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첫 번째 만난 인생의 장애에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한번 실패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인생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실패를 통해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가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기근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믿음의 법칙이 무엇입니까?

1. 좋은 생각을 해야합니다

문제를 만날 때 염려, 불안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 바른 생각을 하여야합니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생각이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났을 때 좋지 못한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케 되고,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름진 땅이어야 된다. 기근이 없는 땅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가나안 땅이 광야이고, 기근이 발생하자 아브라함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축복은 기름진 땅에서만 하고 외쳤습니다.

없는 것에서 있게 하시고, 가난한 자를 통해서 부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버리고 기름진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령한 은혜가 없는 애굽 땅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내려가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염려를 했습니다.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염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전에 읽었습니다만 다시 한 번 11-1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믿음을 잃어버리니까 모든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니까 염려가 급습합니다. 누가 내 아내를 데려가고 나를 죽이면 어떻게 하지? 불안이 그를 누릅니다. 미래가 밝지를 않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스스로가 자신을 죽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좋지 못한 생각 때문에 스스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 장애물을 만날 때 좋은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나쁜 생각, 불안한 생각, 믿음이 없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활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좋은 생각을 선택하고 분별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생각이 나쁘면 안 됩니다.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형들에 대한 미움, 복수, 좌절 등등 이런 것만을 생각했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데 야곱이 죽고 난 후에 형들이 야곱이 자기들에게 복수할 것을 염려하여 요셉에게 와서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하자 요셉은 이런 말을 합니다.

창세기 50:20-21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이 복을 받는 비결은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좋은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게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먼저 나쁜 생각을 합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아내들은 별 생각을 다합니다. 밤 1시 2시 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무슨 사고나 나지는 않았나? 이 남편이 어디서 어떤 여자하고 잠을 자나, 어떤 여자하고 술을 먹나....”

좋은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생각이 그 인생을 결정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사랑해야합니다.

시편 119편 99절에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 105절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나를 명철하게 하여서 바른 생각을 갖게 합니다. 말씀이 나를 밝은 빛 가운데 걸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면 명철을 얻게 됩니다. 명철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자연히 좋은 생각, 믿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열등의식, 좌절감, 불안, 두려움, 가난, 불행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열등의식, 핍절의식, 실패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자부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독특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창조의식, 그리고 풍부의식과 가능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택하셨다는 사랑의식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기 위해서 부르셨다는 형통의식을 가져야합니다.

말씀이 형통하게 합니다. 말씀이 축복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지금 성경 2,000독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 축복의 생각, 형통한 생각을 갖기 위해서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꿀 송이처럼 달게 여기십시오. 그럴 때 문제 가운데 형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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