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주현정 전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그녀는 엄마가 가장 바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양보한아름다운 배려 뒤에 숨겨진 주부궁사 국가대표뿐 아니라 엄마로 성장해왔던 주현정의 결혼이야기를 나누었다.

1.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 양궁단체 금메달리스트라고 많이 얘기를 합니다. 은퇴는 2014년아시안 게임이고, 2015년 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2년은공백기를 가졌습니다. 사실 공백기라기보다는 그 당시 저는 아이가 있다 보니까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아이와떨어져있는 시간도 많아서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제 몸을 회복하는데 시간을 보냈죠.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 전 국가대표 선수>

2. 은퇴할당시 국내최초 주부궁사였다. 은퇴 후 삶이 궁금하다.

25년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해왔는데 마음을 다잡는데 2년 걸렸어요. 운동을 그만두고 우울증이 왔었어요. 아이, 어깨 아픈 것 모든 것이 다 남편 때문인 것 같고 아이를보면 죄책감에 눈물이 났었어요. 제에게 양궁이 전부인데 은퇴하고 억지로 끌려가서 선택된 모든 상황의원인이 남편이라 생각하며 우울증이 왔죠. 저는 초등학교 때 운동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어려운 것 보다 재미있고 즐거워서 해왔는데, 어느 순간 운동을 하면서돈을 생각하고 성적에 얽매어있고, 성적을 쫓아가는 그런 선수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어깨부상이 왔어요. 그 부상을통해서 여러 가지 시선이 생겼어요. 운동이 안된 후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깨 아픈 후배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도드라져 있어서 나만 아프다고 생각했구나 싶었어요. 양궁에서 많은 분들께서 지도자를 하고 계세요. 주변 분들은 지도자를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저는 누구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즐겁게 했던 양궁이 효자종목이지만비인기 종목이라서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든 운동이다 보니까 내가 양궁을 남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대한양궁협회에서 여자양궁 메달리스트들의 모임인 명궁회 모임이 있어요. 현역선수와 은퇴한 선수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양궁을 알리고 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어요.  또 파이빅스(양궁용품 제조업체)에서 교육팀 팀장으로 일을 했어요. 마케팅, 세미나, 교육업무등 퇴근도 너무 늦고 집에 빨리 가야 7시 반이었고 국내외 출장도 많았어요. 생각보다 일이 많아지다 보니 아이 때문에 점점 고민이 되기 시작해서 현재는 관두었어요.

3. 임신사실을 태릉선수촌에 있을 때 알았다고...

남편이 계동현 선수인데 사실 제가 선배였고 남편은 후배였어요. 같이 훈련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과 친해지게 되었어요. 그때 저의사투리를 고쳐주겠다면서 매일 저녁 7시에 전화통화를 하자고 하더라고요.그때는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서 좋았어요.

임신 사실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던 태릉선수촌에 있을 때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 저의 인생목표는 런던올림픽이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겨버려서 ‘올림픽이냐, 아이냐’ 선택을 해야 했어요. 제가운동선수로 늦게 승승장구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이는 나중에라도 가질 수 있으니까 메달이라는 목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초음파로 아이를 만나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는 아이의생명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선발전에서 일부러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입덧 때문에 활을 쏘기가 힘들었는데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성적이 좋았어요. 선발전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팀(현대모비스)에서는 입덧이 멈추고 성적이 나오니 아이에게 고맙고 더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 전 국가대표 선수>

그때부터 또 다른 고민이 생겼어요. 이제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시댁은 김포, 친정은전라도, 남편은 인천, 저는 용인에 있었어요.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정말 운동을 그만둬야겠구나. 아이는 희생이라는걸알게 되었죠. 양가부모님께 아이를 봐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시댁은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하시고, 친정은 먼 전라도로 아이를 보내야 했어요. 그때 실업팀 입단 때친언니같이 지낸 친한 언니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언니가 “내가 너의 아이를 봐줄 테니 너는 운동을더 해라” 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언니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는데, 제 아이를 셋째로여기며 가족보다 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사람이에요.

4. 아이엄마로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저는 활을 빨리 쏘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선수였는데 아이가 있다 보니 관리가 제대로되지 못했어요. 어깨가 점점 심각해졌지만 시합 때 결과가 좋게 나오다 보니 스테로이드제 주사를 맞으면서운동을 했어요. 어깨가 아프니깐 아이를 안을 수 없었어요. 울면지쳐 잠들 때까지 그냥 둘 수 밖에 없었어요. 아이를 2주에한번씩 보면서 3년을 보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애착불안증세가시작되었어요. 손가락을 빨고, 물어뜯고, 불안하면 서서 쉬하고 그랬는데도 냉정하게 뒤돌아서 훈련장에 가고 그랬어요.

▲ <2008년 베이징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 전 국가대표 선수>

2014년 아시안 게임 때 어깨가 가장 심각한 상태였어요. 활을 쏠 수 없을 정도가 된 거죠. 제 몸은 안 좋아지고 아이는딱 4-5살이 된 거죠. 상처가 보이지는 않지만 엄마가 아픈걸아이가 아니깐 “엄마 아파?” 하면서 대일밴드를 붙여주고, 제가 시합을 가야 해서 10일 넘게 못 올 때면 저에게 “즐겁게가서 쏘고 와” 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때 사실 멘탈이굉장히 힘들었는데, 아이가 금메달을 따고 오라고 하지 않고 엄마보고 즐겁게 쏘고 오라고 하는 게 너무신기하고 고마웠어요. 그때 부담의 크기가 너무 크고, 불안했어요.  인천아시안게임이 우리나라에서 하니깐 주변의모든 사람들은 잘하라고 하는데 아들만 즐겁게 하고 오라고 하는 거에요.

<2편으로 이어집니다.> 

공동취재 :신호진, 이모은, 장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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