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거절, 적절한 거절도 진정한 도움의 일부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만큼이나 이타적인 본성 또한 갖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유는 결국 나도 언젠가는 도움을 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게 도움을 청할 때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모든 부탁을 잘 들어줄 만한 능력과 여유가 없고, 세상에는 남의 호의를 이용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을 때 기꺼이 도와줄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멈춰서 충분히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부탁이 타당하며 합리적인 부탁인가? 상대가 정말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인가? 내가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상황인가? 좀 더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방법이나 다른 사람은 없는가?

이 모든 답이 YES라 해도,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이 도움이 상대는 물론 나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길인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거절하는 편이 좋다. 거절하지 못해 들어주는 부탁이라면, 당장은 원만히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나의 자존감을 해치고, 장기적으로는 상대방과의 관계마저 해칠 수 있다.

 

그러나 결론이 내려졌다 해도 거절이란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은 거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절을 ‘잘 못’하거나 ‘잘못’하는 데서 벌어지는 손해와 피해는 엄청나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공동체와 예의, 권위를 중시하는 문화권이다 보니 거절 자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구권에서 쓴 화법 관련 책을 보면 거절할 때 너무 즉시 딱 자르지 말고 “확답을 미루라.”는 조언이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지나쳐 문제인 경우가 많으니 적절하지 않은 조언인 듯싶다. 기본적으로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하다면 분명히 의사를 밝히는 게 좋다. 애매하게 말해서 질질 끌다 보면 상대는 점점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

다만 거절의 의사를 ‘분명하지만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거절할 때 꼭 덧붙여야 할 요소가 세 가지 있다. 첫째, 미안한 마음을 꼭 표현하고(비록 미안하지 않더라도) 둘째, 거절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을 밝히고(비록 핑계더라도) 셋째, 거절하는 대신 대안을 제시한다.(빠져나갈 구멍은 필수)

예시문을 들자면, “정말 죄송한데 제가 8월까지 원고 마감이라 너무 바빠서요, 마감 끝내고 여유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런 거절의 모범 답안을 누군가에게 두 번 이상 들었다면 거절이라 생각하는 게 맞다. 아예 거절이 아니라면, 대안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간혹 가다 이 정도 표현도 거절로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좀 더 확실히 말할 필요가 있다. ‘대안’부터 빼고 다시 말한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너무 바빠서요.”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No’를 직접 말하는 수밖에 없다. “죄송한데, 안 되겠네요.”

단, 일단 모범적인 거절로 안 될 상대라는 판단이 들면 마지막 단계까지 가는 데 시간을 너무 끌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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