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역전] 꿈에는 귀천이 없다
[인성역전] 꿈에는 귀천이 없다
  • 김현경 작가
  • 승인 2018.02.26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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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 다양한 행복의 기준에는 우열이 없다.

내가 실제로 만난 한 친구의 이야기이다. 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막 데뷔작을 출간한 병아리 소설가였고, 그 친구는 소설가 지망생으로서의 길을 결심한 참이었다. 그는 애초 소설가가 되기 위한 조언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했던 것 같지만, 나이도 비슷하고 통하는 면이 많아 곧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는 당시 평생 꿈꿔왔던 소설가로서의 삶이 현실적으로 꿈꾸던 것과 너무나 다름을 깨닫고 황망해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그도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 수 있길 바랐고, 나름 성의를 다해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아무리 야무진 꿈과 굳은 의지를 갖고 시작했다 해도 경제적 대가도 기약도 없는 습작의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내가 쓴 글을 읽어주고 피드백을 해 주는 것이 그 시간을 견디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습작에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얼마 못 가 습작을 흐지부지 중단했다. 짧은 습작이나마 읽어 본 바 내 판단으로 그는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의욕을 잃은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게다가 그는 습작을 하려고 생계를 위한 일은 최소한으로 조정하고 많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해 둔 상태였기에 그 시간을 그렇게 어영부영 허비하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 갔다. 나는 그것이 노력이 부족한 것(의지 문제)이거나 두려워서 피하는 것(감정 문제)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납득은 안 되었다.

 

보다 못한 내가 채근하자, 그가 조심스레 털어놓는 진심임이 분명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지만 너무 막막하다. 이러다 언제 돈 벌어 장가가고 벤츠 타느냐?”

 

 

 

 

그 말에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소설가를 꿈꾸면서 나도 정말 많은 고민과 걱정을 했지만, 벤츠 탈 걱정은 전혀 생각도 못해 본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향한 길에서 함정에 빠지는 것이 의지나 감정의 문제가 아닌, 인식(생각)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생각 자체를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딱 잘라 말해서, 자력으로 벤츠를 타고 싶으면 소설가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소설가 해서 벤츠를 탈 수도 있겠지만, 그걸 보고 가기엔 너무 확률도 낮고 불확실한 길이다.

 

나는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이 벤츠를 타는 것보다 ‘더 나은’ 꿈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성향과 적성과 타고나며, 각자 맡은 역할이 따로 있고 가치도 꿈도 다 다른 법이다. 내가 벤츠 탈 걱정을 해보지 않은 것은 내가 특별히 검소하거나 지각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좋은 차에 관심이 없을 뿐이다. 이런 내 취향이 소설가로 살기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 벤츠를 타는 것과 소설가가 되는 것은 동시에 추구해선 곤란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벤츠 타고 싶으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소설가는 경제적으로 안정성이 아주 떨어지는 직업이다. 물론 누구라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추구하기 어려운 가치들 사이에 서게 되면 자신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지금까지도 그가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마 그때와 달라진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평생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소설가란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 해야 할까? 재능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의지가 부족해서? 실은 그 친구가 진정으로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그보다 다른 것을 더 원했다.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은 있었지만, 소설가로서의 삶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도 결국은 타인들과 소통하고 인정받기 위한 길이지만,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비하면 그 길은 깊고 넓은 대신 멀고 느리다. 소설 한 편으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해야 하며, 사실상 그 과정이 소설가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소설가들이 결과물을 위해 그 시간을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소설가들은 그 과정을 한편으로 더 편하고 즐겁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지극히 외향적인 성향으로 평소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인정에 굉장히 민감한 성격이었기에, 그런 삶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향은 타고나는 것이라 고치기 어려울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성향에 맞추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그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안정을 원했다. 그러면서 소설가를 꿈꾼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함)와 같은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성향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깨닫고 인정했다면, 불필요한 방황과 자괴감과 시간 낭비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벤츠를 타고 싶다는 것 따윈 꿈다운 꿈이 될 수 없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잘못된 생각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꿈에 귀천은 없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그런 잘못된 인식부터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세상에 모두 나처럼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걸 제일 즐거워하고, 돌아다닐 땐 대중교통이 제일이며 차는 좀 덜덜거려야 제 맛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만 있다면, 벤츠 자동차와 같이 훌륭한 기술력은 결코 발전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김현경

소설가

에니어그램 강사

팟캐스트 인성역전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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