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은 인간 본연의 욕구인 동시에, 시대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만의 고유한 점은 무엇일까?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직업, 취미, 친구, 배우자를 만나야 할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혹은 적어도 한 번쯤은 해본 고민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개성과 고유한 가치를 갖고 태어나며, 그것을 찾아 실현하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충실하며 살아가던 인간에게 처음으로 자아 정체성에 관한 깨달음과 고민이 찾아오는 시기는 대개 10대 초중반의 사춘기이다. 이 시기를 그런 고민 없이 지나가더라도 남은 생애 중 언젠가는 부딪치게 되어 있다. 본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진로나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언젠가는 그것들이 자아와 충돌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어떤 이에게도 진정한 자신의 됨됨이와 욕구를 깨닫고, 그것을 주변 상황과 조화시킨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일 수는 없다. 냉철한 자기 성찰과 강한 의지는 물론 적절한 여건까지 모두 갖춰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 출처:픽사베이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아실현이란 오히려 부담스러운 과제로 다가온다. 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란다.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남의 기대에 맞춘 것인지 모르겠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삶은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은 두렵다. 나만의 독특한 개성이나 재능을 찾고 싶지만 도무지 없는 것 같다. 이런 고민들은 사실 대체로 타당한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이 특별하다는 말은 진짜 특별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므로 자신의 고유한 욕구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완전히 분리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자아실현이란 진정 인간의 본질적 욕구에 해당하는가? 하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개인은 근대의 발명품”이란 말이 있다. 고유한 개인의 정체성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개념 자체가 근대에 들어와서야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존재로서만 의미를 인정받았다. 전근대 사회에서 한 인간은 오로지 국가 혹은 지배층에 충성하고, 신을 찬미하고,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역할만 충실히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개인적인 욕구와 특별함을 추구하는 일은 권장되지 별로 않았고, 오히려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동체 질서에서의 일탈을 부추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문화), 시민혁명(정치), 산업혁명(사회/경제)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거치며 비로소 인류는 신과 왕의 질서의 부속품에서 벗어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도 고립된 부족사회 등에서는 ‘개인’을 뜻하는 단어, 즉 개념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사회에서 한 인간은 한 마리의 개미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을지 모른다.

개미는 인간과 함께 ‘진사회성’을 지닌 몇 안 되는 생물이다. 개미는 인간 못지않게 수많은 개체들이 복잡한 구조와 계층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간다. 한 마리의 개미는 오로지 그 사회를 유지하는 한 부분으로서만 기능한다. 적에 맞서 싸우는 역할을 맡은 개미가 자기 한 몸 보전하고자 도망치는 일은 없다. 알 낳는 역할을 맡은 개미가 알만 낳는 인생은 따분하고 의미 없다며 반발하는 일은 없다. 이런 점에서 한 마리의 개미는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이긴 하나 사실상은 더 큰 한 생명체의 부분, 즉 세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인 셈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인간상은 이런 개미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신분이나 가문에 따른 사회적 역할이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었고, 오로지 여기 충실하게 평생을 살아가는 것만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 출처:픽사베이

물론 결국 인간과 개미는 달랐다. 인간들은 유사 이래 끈질기게 개인을 지우려는 공동체 질서에 저항해 왔다. 처별과 차별로 억압해도 일탈자는 끊임없이 나왔고, 그것이 거대한 사회 변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수백만 년 전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개미와 달리 인간은 결국 개인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시대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것을 보면 역시 자아정체성 추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발달심리학에서 널리 인정받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이란 것이 있다. 인간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충족되어야 순차적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이론이다. 5단계는 생리적 욕구 → 안전의 욕구 → 인정과 공감의 욕구 → 존경의 욕구 → 자아실현의 욕구 순서이다. 이렇게 보면 잦은 기근과 전쟁으로 보통 사람들은 늘 생존의 문제에 집중해야 했던 전근대 때 자아실현의 문제가 보편화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탄생은 물질적 풍요와 함께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자아실현의 욕구보다 앞선 욕구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살해당할 걱정은 별로 없이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부터 충분한 인정과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 자아실현이란 부담스럽고 사치스런 과제이다. 인정과 존경에 목말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되고, 설사 그것에 성공하더라도 결국은 공허함에 마주치게 된다.

사실 개인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던 전근대보다 현대인들이 더 행복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전근대인들은 상상도 못했던 물질적 풍요와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면서도 현대인들은 지독히 외로워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며,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자아실현이란 이상적이며 고차원적인 가치이기는 하나, 모두에게 기대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만이 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지키는 비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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