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정체성에 흔들림없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어야

20여 년 전, 대학 합격증서를 받기 위해 학교 사무실에 들렀을 때, 사무실 근처 복도에서 기다리던 학과 선배들이 오늘 환영식이 있으니 같이 저녁먹자고 나를 불렀다. 선배들의 안내로 도착한 과방에는 나처럼 들어온 동기 여럿이 어색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선배들 틈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까지 4차 술자리를 소화하고 처음 만난 선배의 자취방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 점심까지 함께 하고 헤어진 그 친구들이 나와 대학시절 학생회와 학과 일을 도맡아 하는 학과지킴이가 되었다. 우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선배와의 간담회, 각종 MT, 농활까지 모든 학과 일정에 다 성실히 참여하고 다른 동기 친구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시간이 지나 선배가 된 나는 내가 지내온 경험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노력했다. 처음 학과 사무실을 들른 신입생들을 붙잡아 그날 새벽까지 술 마시고 다음날 사우나와 점심을 제공하는 코스를 시작으로 일 년 동안 쉼 없이 이어지는 학과 행사를 참여하고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동아리나 개인 취미활동 등 다른 활동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냥 학과생활이 좋았고 내가 남들에게 자랑했던 자산은 학과에서 알고 있는 선배의 수, 학과 행사에 참여한 횟수와 시간(농활 최다 참여 및 최장 시간 참여 기록이 있었음)이었다. 그 당시 나의 정체성은 바로 나의 학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생 신분으로 다시 만난 학과는 뭔지 모르게 낯설었다. 난 일주일에 사나흘은 학과방에서 잠을 자며 지내서 ‘홈리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복학 이후 한 번 학과방에서 자다가 처음 보는 후배가 쏘는 ‘얘는 뭐지’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후배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내 모습에 2년의 공백으로 인해 과방을 ‘내 공간’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제는 ‘누구나’가 아닌 ‘몇몇’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얘는 뭐지’ 눈빛은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학과 일에 내가 익숙한 방법으로 참여하려 할 때마다 종종 마주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움찔함과 함께 허전함을 느꼈다. 학과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구나. 학과는 더 이상 나의 정체성이 아니었다.

당연히 나의 것인 줄만 알았던 익숙한 환경에서 이방인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꽤나 불편한 감정이었다. 학과에서 더 이상 내가 원하는 유대감이나 소속감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면 어디에 적을 두어야 할까 고민했다. 뒤늦게 동아리라도 한 번 가입해 볼 요량으로 몇 군데 기웃거려 봤으나, 낯선 사람들의 리그에 많은 노력을 들여가며 끼어들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 출처:픽사베이

다행히 나는 군 생활 동안 틈틈이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한 덕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답은 가지고 있었다. 즉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허전함과 불편함 속에서도 스스로 집중하고 매달릴 수 있는 거리는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나름의 구심점이 되는 새로운 리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학과가 나의 정체성이었던 시절은 큰 노력이나 별 생각 없이 시작된 것이었다. 첫 만남에서 선배들하고 끝까지 놀았고, 놀다보니 선배들이 찾고, 찾는데 찾아가니 더 좋아해주고, 이런 식으로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이 들고 인정받게 되고, 그 조직에서 내가 맡은 역할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또 편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낯설어진 어색한 학과에서 나의 익숙함은 더 이상 누구나 받아주지 않는 나만의 감정이 되었고, 경험이라 생각한 내 익숙한 행동은 소위 꼰대 짓에 가까운 행동이 되었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서 바라본 ‘학과의 원은석’은 익숙함과 경험을 무기로 학과를 어색해하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다른 친구들을 단순히 책임감이 없다고 치부하고 무시하면서 나의 것을 강권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때 나의 것이었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경험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공동체 안의 새로운 정체성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만 그렇고 여전히 공감을 잘 못해 관계가 많이 서툴다.)

 

▲ 출처:픽사베이

정체성은 유효기간이 있다. 내가 조직을 떠나거나 조직이 변화하면 유효기간이 끝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체성을 맞이하거나 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나의 경우처럼 이 시기에 확고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에 집중하며 다른 정체성으로 자연스럽게 갈아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편안한 시점이라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이나 환경이 과연 내 것일까?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나의 것인가 조직의 것인가? 지금 익숙한 나의 정체성 말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정체성을 나는 가지고 있나? 그리고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팟캐스트 인성역전 PD

 

저작권자 © 한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