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달이 진정한 정체성의 의미마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대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모든 인간의 영원한 숙제와도 같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안에서든 밖에서든 찾고자 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세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주체이며 외부세계에 있는 대상과 대립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나 자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여러 사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자각을 통해 자신만의 모습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가족 안에서 구체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외적 환경인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직장 등의 관계 속에서 나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하게 된다.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타인에 대해 가졌던 믿음의 불확실성, 또 그로 인한 소외감, 그리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알 수도 없다는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어려운 과정이 타인, 집단 혹은 사회 공동체에서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자아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 출처:픽사베이

하지만 이렇게 사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우리는 또다시 자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나와 다르다고 판단 내렸던 타인들이 결국 나와 그리 다른 존재가 아니며, 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나 자신의 존재 가치도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 방황이 시작된다.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 혹은 내가 만나는 타인들이 어떤 부류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방식(타인과의 분리, 타인과의 관계) 모두 자기 정체성을 알게끔 도와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아정체성을 내 육체의 유기적 통일성(내가 원하는 것)에만 맞추면 본능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사회적 요구(타인이 원하는 것)에만 맞추면 여러 가지 역할을 연출하게 되어 나의 통일성이 무너진다.

사실 생물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만 보면 결국 자아 정체성은 없는 것이 된다. 이성적 차원에서 인격을 얘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너와 나를 우리라는 보편성의 기준에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인간이 종교를 갖는 것도 결국 정체성 형성과 연관이 있다. 신과의 관계 설정, 우주와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안정감을 유지하며, 삶의 부조리나 희로애락을 처리해 나간다.

자기 정체성은 철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정체성 문제도 다각도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인격과 온라인상에서의 인격이 전혀 다르게 자신의 삶을 연출할 수 있게 되면서 당사자도 어느 모습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가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인공지능의 발달도 정체성 문제를 본질적 측면에서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 출처:픽사베이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자기 정체성의 의미는 좀 더 새로워져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 맞춰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즉 지금의 나의 노력, 독자성, 독창성 속에서 미래의 새로운 나를 발견할 근거가 바로 진정한 자기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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