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력의 중요성과 속성에 관하여

오래 전 중학생 때 어머니께서 한 번 들어보라며 건네주신 복사본 테이프가 있었다. 한 전도사가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는 내용이었다. 꽤나 재미있어서 한동안 매일 잠들기 전에 틀어놓고 듣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그 전도사가 중학생 때 교회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줄까?’하시는 질문에 ‘지혜요’라고 답했더니 진짜 지혜를 주셨다고 했다. 이후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저장되었고, 심지어 밤에 잘 때 시험공부를 할 책을 베고 자면 다음날 아침에 그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어서 마음대로 페이지를 넘길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가 쉬워졌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마음에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그대로 저장된다니 얼마나 좋을까? 나도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전도사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나는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단 하나의 능력을 준다고 하면 어떤 능력을 달라고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 답을 얻게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당시 아내의 가족들과 저녁을 먹다가 장모님께서 당신이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이 가족에게 기도 제목을 하나씩 받아 일 년 동안 그 제목으로 기도를 하라는 숙제를 당신께 내줬는데, 나의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해주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다. 그 질문을 받고 갑자기 머릿속에서 오랜 고민이 딱! 정리가 되며 바로 답이 떠올랐다. “판단력이요. 좋은 판단력을 얻도록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장모님께서는 나의 대답이 의외라는 기색이셨다. 당시 나의 상황은 박사학위를 따고 여러 지방의 대학을 돌며 강사로 일하면서 교수 채용 공고가 나는 대로 지원하던 시기였다. 장모님께서는 왜 대학교수가 되게 해 달라는 구체적인 바람이 아닌 판단력을 말했느냐고 물어보셨다.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그저 하나의 결과입니다. 교수가 되고 난 다음에도 나에게 계속 도움을 줄 수 있고, 또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더니, 좋은 판단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잘하면 그 결과로 교수라는 직업은 따라올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잘하면 돈도 따라올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게 판단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 출처:픽사베이

한창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 원자력연구원에 근무하는 친구와 술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문과 출신인데도 이과의 괴물들과 함께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학창시절까지 익숙했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해 주었다. 그 중심 내용은 친구의 상사 연구원에 관한 일화들이었다.

친구는 그 상사를 ‘천재’라고 표현했고, 그를 만난 이후 ‘똑똑하다’는 가치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고 했다. 예전에는 단순히 지식이 많거나 습득 능력이 뛰어난 수준을 똑똑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 들어가서 그 중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을 만나보니, 진짜 똑똑한 사람은 예측을 한다고 했다.

그 상사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이러저러한 상황을 면밀하게 따져보고 숙고의 시간을 가진 후 예측을 하는데, 그 결과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그 예측의 범위가 단순히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결과뿐 아니라 그 일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 내 수많은 사건들에 이른단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예측을 잘하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 공부를 해 본 결과, 자신이 내린 결론은 ‘판단력이 좋으면 예측을 잘한다’였단다. 그리고 판단력이 예측으로 이어지려면 수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려 보고 그 결과를 확인해 보면서 자신의 판단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왔던 ‘어떤 능력을 원할 것인가?’에 적절한 대답이 될 가능성이 유력한 가치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20대 후반,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친구의 ‘똑똑한 상사에 대한 견문록’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그가 제시했던 ‘판단력-자신감-예측-똑똑함’의 관계는 지금 생각해봐도 아주 괜찮고 단단한 생각인 듯하다.

 

▲ 출처:픽사베이

누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중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좋으면 자신이 판단을 하기까지 활용했던 사고의 방법, 절차 그리고 감각 등에 만족하게 되고, 판단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을 활용했을 때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얻게 된 자신감을 토대로 판단의 지평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까지 확대하면, 점차 내가 타인과 함께 맞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예측까지도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예측이 다 맞을 수는 없고,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예측을 하는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또한 판단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내린 판단을 좋은 결과로 이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과거 만족스러운 판단을 내려 본 경험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만의 판단 방법과 감각을 계속해서 가다듬어 나가다 보면, 언제 어떻게 마주할지 모르는 결정적인 순간,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앞날에 큰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결정에서 큰 힘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불안함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은 판단력이 중요한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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