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스탬프투어요? 그런데 일본에 가면 말이죠. 아직도 종이로 스탬프투어를 하고 있어요. 그거 아세요?”

정부과제선정을 위한 발표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PT를 마치고 질문을 받는데,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께서 마이크를 잡더니 한마디 하신다.

“저희 서비스는 전세계에서 처음입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본은여전히 종이로 하고 있다고요”

발표가 끝나고 다시 생각을 해 봤는데, 그 심사위원의 심오한 뜻을 모르겠더라. 일본이 안 하는데, 건방지게 왜 우리가 먼저 하냐는 말인지, 일본이 하지 않는 것은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인지, 일본이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하면 안 된다는 뜻인지. ’일본을 배우자’해서 배움의 대상이었던 일본이 그분에게는 배움을넘어 숭배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보다 앞선 일본에 가서 보고 그걸 베껴서사업을 한다. 앞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 하는 이 전략은 아주 유효해서, 지난 고도성장기에 삼성을 포함하여 대부분 우리나라 기업들이 취한 주요 전략이었다. 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이다. 성공 전략이고,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2008년, 미국에서 그루폰(groupon)이 나와서 ‘소셜 커머스’라는 사업을 시작한다.공동구매 방식을 이용해 음식점, 공연 등을 50% 가까이할인해서 판매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다. 소셜 커머스 원조 기업 그루폰이 아직 한국에 진출을 하지않았다. 발 빠르게 그 모델을 가져 온다.

티몬, 위메프, 쿠팡 등 그루폰의 아류 모델들이 한국에서 장사를 시작한다. 그런데처음에는 소셜 커머스를 표방하던 이들은 미국과는 달리 지역 상권을 온라인에 끌어 들이는 모델보다 온라인쇼핑몰 사업을 한다. 그러면서 국내 시장이라는 한정된 파이를 선점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경쟁’을 한다. 입시전쟁,출근전쟁, 주차전쟁, 이것도 모자라 머리에 진짜핵전쟁의 위험을 이고 사는 이 땅에서 엄청난 ‘마케팅 전쟁’을한다.

톱스타를 내세워, TV 프라임 타임에 엄청난 광고를 한다. 소셜로 지역 상권을 온라인에끌어 댕기는 ‘소셜’은 없고, 오직 하루에 수십, 수백억 원의 돈을 쏟아 붓는 머니 게임만 남는다. ‘귤화위지’, 남쪽의 귤이 북쪽에 오면 탱자가 된다고, ‘소셜’ 없는 ‘소셜커머스’라는 한국형(?) 모델로 이 좁아 터진 땅에서 지들끼리 전쟁을 한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나중에 미국 그루폰이 우리나라에 들어 오지만, 이미 늦었다. 귤이 탱자로 변한 곳에 이 미국기업은 지가 먹던 귤을자신 있게 들고 와서 먹으라고 했으니...... 순진한 생각으로 왔다가 혼쭐만 났다.

 

먼저 가서 깃발을 꽂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것이냐, 그 뒤를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될 것이냐, 정답이 없는 우리 인생처럼 정답은 없다. 그저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경영학자들은 연구에 통해 개척자(pioneer)보다 정착자(settler)가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주장한다. 여기서 개척자는 가장 먼저 개발하고 판매한 회사, 정착자는개척자가 조성한 시장에 그 이후에 진입한 기업을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개척자는 온갖 시행착오를 직접겪어야 하지만, 정착자는 개척자의 실수를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처음 창업을 할까 말까고민하던 시기에 쿠팡, 위메프, 티몬 이 세 소셜 커머스회사들이 미디어에 최대 광고주라서 그런 것인지, 온갖 신문, 방송등의 언론에서 이들이 마치 혁신적인 벤처기업의 모델이라고 엄청나게 빨아 주더라. 미국 것을 빠르게 수입해서매우 훌륭한 오퍼상의 성공 모델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무슨 개척자(pioneer)의상징처럼 써 대는 것을 보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는 참 희한한 나라구나. 이런 비정상의 정상화를 보고 싶다는 주제파악이 안된 욕심이 아마 이 어려운 사업을 시작하게 한 하나의 배경이아닐까 싶다.

그루폰의 한국상륙작전을 격퇴시킨 이런 한국형히어로들의 성공을 보고, 퍼스트 무버보다 패스트 팔로워가 더 낫다, 뭐이런 식의 섣부른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순진해서 실패했던 그루폰 말고, 무지 똑똑한 유튜브의 한국시장 공략을 보자.

‘다모임’, ‘디오데오’, ‘엠군’, ‘풀빵닷컴’, ‘아프리카’, ’판도라’, ‘엠엔캐스트’ 어떤가? 이름들이 어디서 본 것 같은가? 몇 년 전 즈음에는 UCC 열풍 속에서 동영상 콘텐츠 사이트로 날아다니던 회사들이다. 이제는 유튜브 폭격 속에서 다 사라져 버린 추억의 이름들이기도 하다.

‘국경 없는 경쟁’의 시대, 이젠 구호가 아닌 현실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정보 혁명은 공간 혁명이다. 전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SNS 통해, 정보는 국경의 철책 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간다. 막을 수가 없다.

유튜브의 사례에서 보듯이, 2등을 위한 자리가 없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특히 내가 뛰고 있는 IT 비즈니스 세계에선 더욱 이 진실이 가혹하게적용된다. 손가락은 열 개다. 그래서 나온 십진법은 0에서 9까지 열 개의 자리가 있다.6도 있고, 8도 있다. 그런데 컴퓨터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뤄져 있다. 디지털의 이진법은 무(0)과 유(1),이 두 가지로부터 나온다. 있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아쉽게도 5등을 위한 자리도 없고, 심지어2등을 위한 자리도 없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내가 뛰는 바닥이다.

그렇게 일본을 숭상하는 교수님에게 괄시를받던 우리 모바일 스탬프투어가 인정받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멀리 미국에서 물 건너온 미국 게임 때문이다. 스마트폰을들고 다니면서 포켓몬을 잡는 ‘포켓몬고’ 열풍이 있은 후로는우리 것을 설명하면 공무원 선생님들이 금방 이해한다. “아, 포켓몬고랑비슷한 거네요.”, ‘아, 포켓몬고보다 우리가 먼저 했는데......’ 우리 스탬프투어가 포켓몬고의 카피캣(copycat) 취급을받는다. 행복이라는 파랑새처럼 너무 가까워서 잘 안 보이는 것인가, 토종인우리 서비스가, 씁쓸하다.

‘못 가본 길이 더 위험하다’

누구나 잘 안다. 나도 잘 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을 처세술의 첫째로 듣고 배우면서 이 땅에서 자랐다. 패스트팔로워 전략은 카피캣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개척자만 고상하고,정착자의 길이 낮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나도 장사꾼인데,그 정도의 현실감각이나 나름의 영악함이 없겠는가, 그런데 누구도 모난 돌은 안되고, 전부 정만 들고 모난 돌을 찾아 다녀서는 어떻게 되겠나,

누군가는 먼저나서서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 실패하겠지만, 그래서더 위험한 길을 가는 개척자에겐 더 큰 보상이 주어지는 성공 사례가 나와야 한다. 내 나라에 하도 그런사례가 없어서, 정보혁명의 시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것이 없어서,그래서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에서 ‘다이나믹’이 다이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모든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꿈으로택하는 것 같아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먼저 나서야 할 잘난 분들이‘퍼스트무버가 퍼스트루저가 될까 봐’ 다 망설이기만 해서, 순번을 기다리지 못하고 못난 내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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