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위한 단계와 육하원칙 활용하기

 올바른 판단이란 누구에게나 항상 어려운 문제이다. 올바른 것 혹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자신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판단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갖추어져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그리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이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단이나 결정이란 내가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해서 선택한다는 것은 반면 무언가는 버려야만 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결정은 더 어려워진다. 따라서 내가 취할 것보다도 먼저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판단, 결정이 보다 쉬워질 수 있다.

 

▲ 출처:픽사베이

그렇다면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 결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육하원칙 즉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이다. 이중 버릴 것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항목이 있다. 무엇일까? ‘누가’는 주체 즉 ‘나’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보통 선택에 있어 가장 중시하는 항목은 ‘어떻게’이다. 즉 방법과 수단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어떤 방법과 수단을 취하고 버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철학에서 판단의 기준으로 ‘어떻게’ 보다 중시하는 것은 ‘언제’와 ‘어디서’이다. 철학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바로 ‘보편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에서의 보편성은 ‘어디서나’, 필연성은 ‘언제나’로 풀어 쓸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확보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중 보편성 즉 보편화 가능성은 최대 99%일 뿐 100%가 될 수 없다. 100% 즉 1+1=2처럼 반드시 그러한 것은 필연성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은 ‘간접적’ 즉 ‘귀납적 판단’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는 책이나 여러 미디어 혹은 부모님이나 친구, 선배, 후배를 통해 알게 된 것들로 판단의 기준을 갖추게 된다. 이것은 ‘누구나’의 ‘일반화 가능성’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간접적 판단이라 하는데, 이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맛집’의 예를 들어보자. 사람이 많은 식당을 보면 왠지 가보고 싶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간접적으로 형향을 받는 것이다. 사실 식당을 찾을 때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마련이다. 즉 판단의 1단계, ‘들어보자’.

그런데 이 귀납적 판단의 종결점은 ‘확인해보자’이다. 사실 본인이 직접 체험을 해 보지 않으면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그 식당에 들어가서 한 번 먹어보게 된다. 귀납적 체험의 마지막은 ‘직접적’ 체험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맛집이면 ‘일반화 가능성’ 혹은 ‘보편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먹어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집이 진정한 맛집인지 판단을 내리기는 주저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결국 내가 먹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2단계인 ‘확인해보자’는 것이 필요하다. 당연히 때론 맛집 음식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귀납적/경험적 추리, 즉 보편화 가능성은 100%가 아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사람 많은 식당에 들어가면 실패의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 출처:픽사베이

 

3단계는 ‘느껴보자’. 이것은 감각보다는 자신의 양심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판단을 내릴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그 다음 체험을 해본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 자신의 진정한 마음이 어떤지 느껴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직관이라는 것이 있다. 칸트의 말로는 ‘선의지’ 혹은 공자의 말로는 ‘양심’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해 판단의 결과를 잘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이 세 가지 과정을 통해서 판단했다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기 쉽다. 내 판단 혹은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우리는 인생길에 걸림돌이 너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누구나 돌에 걸려 넘어지면 내가 넘어지게 한 그 돌을 쳐다보게 된다. 즉 실패하면 그 과정을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4단계, ‘돌아보자’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즉 내 삶의 모든 과정을 반성, 반추해 보자는 의미이다.

마지막 단계는 ‘기다리자’이다. 어쩌면 ‘기다리자’라는 말은 적절한 판단의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다리자’라는 말은 서양철학에서의 ‘에포케(판단중지)’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모든 단계를 거쳐 신중하게 판단했다 하더라도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있고 일이 잘못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서양철학에서는 ‘Kenosis(비움)라고도 한다. 시간을 갖고 머리를 비우고 마음의 욕심을 비우고 기다리는 일도 판단의 중요한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판단의 조건이 있다. 육하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그 무엇보다도 ‘왜’이다. 무엇을 판단할 때, 우리는 ‘언제 할까, 어디서 하지, 뭘 할까, 어떻게 할까’ 등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육하원칙의 마지막인 ‘왜’이다. 어떠한 것에 대해 판단 내리기 전에 꼭 고려해야 할 것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이다. 판단의 진정한 목적부터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은 아무리 고민해도 쓸데없는 짓이 될 뿐이다. 잊지 말자. ‘나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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