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어원으로 알아보는 이별의 속성

어떤 철학자도 이별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아픔의 해결책에 대해 진지하고 속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는 이별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들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이별을 가슴 시리게 경험했고, 그로 인해 많은 시간동안 고뇌했던 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이별을 말하기 보다는 이별하지 않는 방법, 혹은 새로운 만남의 이전 단계로서의 이별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만남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이별은 그 과정일 뿐이라는 덕담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철학자도 사람이기에 이를 위안 삼아 내일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덧없는 위안만이 아닌 해답 또한 주고자 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크고 아픈 이별은 무엇일까? 누구와 이별하였는가 보다는 어떻게 왜 이별하게 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일지 모른다. 가장 아픈 이별의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은 인간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가장 절대적인 이별이다. 죽음에 관해 논하지 않은 철학자는 찾기 어렵다. 이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혹은 아픔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철학자들이 조언했던가?

 

▲ 출처 : 픽사베이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저 내려놓음으로써, 받아들임으로써, 기다림으로써 해소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왜 철학자들은 스스로도 감히 장담하지 못할 이러한 해결책을 제안했을까? 답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희망에 있었다.

이별의 의미와 어원을 밝혀보자. 이별(離別)이란 헤어지는 것이라고 모든 사전에서 알려주고 있는데, 이 말의 자동사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헤매다’ ‘헤아리다’ ‘헤어지다’ ‘헤지다’ ‘헤집다’ ‘헤치다’...등 ‘헤다’라는 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단어로 짐작할 만한 동사가 많다.

역사적으로 ‘헤다’라는 단어의 파생어로서 볼 수 있는 ‘헤여디다’가 처음 한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석보상절이다. 석보상절은 용비어천가(1447년:세종 29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문학집)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한글 최초의 위인전이다. 이 책은 수양대군이 세종의 생전 명을 받들어 한글로 쓴 부처님의 일대기이다. 바로 이 책에 ‘헤여디다(북한에서는 ‘헤어지다’를 ‘헤여지다’로 쓰고 있다)’가 나온다. 여기에서의 ‘헤여디다’는 말은 ‘손끝이 헤지다’는 의미로 찢어지고 갈라졌다는 의미이다.

언제부터 찢어지고 갈라진 것을 ‘헤’라는 음가를 활용해서 표현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여러 단어에서 사용되고 있고, 더욱이 최초의 한글 책에 나올 정도로 대중들이 일상에서 사용했다면 그 기원은 무척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출처 : 픽사베이

우리는 누구나 엄마의 뱃속에서 나가야 하는 헤어짐을 시작으로 해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승과의 헤어짐을 끝으로 하는 일대기를 거친다. 그런데 헤진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복구된다. 손끝이 갈라지면 그 갈라진 것이 다시 모아져 붙든가 아니면 갈라진 것이 떨어지고 새 살이 돋게 된다. 세상에 태어날 때 탯줄을 끊지만 이 헤어짐은 아빠 엄마와의 만남을 위한 것이고, 이승과의 헤어짐은 자연 넓게는 우주로 돌아감을 위한 것이다.

물론 이 ‘헤어짐’들은 그 헤진 곳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물기까지는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을 가져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픔 이상의 새로운 행복이 기다릴 것이라는 희망이 우리의 삶을 살만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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