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십여 년 전에 고향 마을 가곡에 마을회관을 새로 짓고 오래전부터 고향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사람들이 1년에 한 번은고향에서 만나자고 누군가가 제안하여 매년 7월 17일을 고향의 날로 정하여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니 지만 그 당시에는 공휴일이니까 고향의 날로 정하여 고향에 사는 사람들과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이 고향마을에서 1년에 한 번은 만나자고 했다. 고향의 날은 나보다 몇 년은 연배인 선배님들이 주선을 하여 첫 모임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릴 때 고향 마을에는 30여 가구가 넘게 살고 있었고 내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나와 나이가 같은 친구들도 남자가 5명, 여자가 7명이나 됐다. 마을 중앙에 길이 나 있고 마당과 연결 되어 있어 공을 차기도 했고, 자치기를 하기도 했다. 매년 추석명 절에는 콩클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의 고향마을은 헐린 집이 많고 우리 보다 젊은 사람은 대부분 외지로 떠나서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

첫 모임에 나갔더니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외지로 이사를 하신 분들도 많이 오셨고 고향을 떠난 후로 동년배이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고향의 날이 생기고 나서야 처음으로 만난 친구도 있었 다. 특히 여자들은 어릴 때 보고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처음에는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어릴 때 동년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반가웠다.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시는 분들이 개도 잡고, 닭도 잡아 고향을 떠나신 분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처럼 만나 고향에 계신 분들이 마련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 안부도 묻고,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도 나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가 가면서 음식을 준비하고 수고 하신 분들을 위해서 자신의 사정에 따라 기부금을 냈다. 모아진 기부금은 마을청년회에서 노인정에 운영비로 쓰라고 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연락처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고향이 라는 곳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옛날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F 후에 고향에 계신 분들이 고향을 떠난 분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며 잠시 쉬자고 하여 쉬게 되었고, 그 후 공휴일이었던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날로 바뀌면서 7월 17일 고향의 날은 운영되지 않고 있다. 정말로 아쉽다. 이제 내 나이도 60을 바라다보고 있는데 내가 초등학교 때 고향을 떠나신 분들의 연세가 못 되어도 80 세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어 어디서 만나도 알아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고향의 날이 운영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명절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고향에 아무도 없다보니 고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머무를 곳이 없어 산소에만 들렸다가 금방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만나 기가 쉽지 않다. 나도 고향에 부모님 산소만 있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명절에는 교통체증도 심하여 어렵게 고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명절날 고향을 찾기 보다 명절이 지난 다음에 고향을 다녀온다.

친구들도 모두 결혼을 하여 명절에는 고향에 내려가지만 처가도 방문해야 되기 때문에 명절 전날 왔다가 명절날 바로 떠난다. 친구 들이 고향에 살 때는 부담 없이 친구의 집을 방문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가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친구 형네 집을 방문하게 되면 친구 형수님이 해주는 밥을 먹어야 하고 다른 일가친척들이 모여 있어 친구랍시고 찾아가기도 쉽지가 않다.

고향의 날 만난 분들과 앞으로 자주 만나자며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지만 막상 전화를 거는 일도 쉽지가 않다. 만나기는 더 쉽지가 않다. 같은 학년이었던 친구들과도 자주 전화통화 하기가 쉽지 않다. 고향의 날은 1년 중에 공휴일 하루를 정해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모이면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고향의 날을 운영하지 않으면서 서로 바쁘다 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누군가가 고향의 날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고향사람들을 1 년에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동년배 친구들끼리라도 1년에 한 번은 만나자고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다. 내가 사정이 되면 다른 친구가 시간이 안 된단다. 이제 직장에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퇴직을 하면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친구들 몇 명이 각자 살 집을 짓고 누구나 와서 함께 대화도 나누는 공동의 공간도 하나 마련하자고 했지만 아직 땅도 마련하지 못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날을 운영하는 것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올해는 고향에 내려가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의논해서 고향의 날을 부활해보자고 해볼 생각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 들이 부담 없이 1년에 한 번은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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