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처음 모내기를 하러 나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모내기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두레를 엮어 공동으로 일을 했다. 모내기할 때 동네 아낙들이 함께 밥을 해서 머리에 이고 줄을 서서 들판으로 나온다.

부잣집 모내기를 할 때는 논이 많다보니 일하는 사람도 많아 밥을 내오는 아낙들도 그 만큼 많아 줄도 길었다. 내오는 반찬의 맛도 집집마다 달라 일하다가 모여 둘러 앉아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는 모내기할 때 나오는 반찬 중에 마른 새우를 넣고 끓인 아욱 국을 제일 좋아했다.

밥을 먹고 나면 누룽지를 먹는다. 가마솥에 누른 누룽지를 긁어 오는데 구수한 누룽지는 참으로 맛이 좋았다. 그때의 맛을 느껴보려고 요즈음 어쩌다 솥에 누른 누룽지를 긁어 먹거나 과자로 만들어 파는 누룽지를 사서 먹어 보지만 그 때의 그 구수한 맛은 느낄수 없다. 누룽지를 먹고 싶을 때는 남은 밥을 솥에 넣고 누룽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하지만 모내기할 때 먹던 그 맛은 아니다.

모내기를 처음 나가는 사람은 신고식을 해야 한다며 모내기를 처음 나가는 사람 양 옆에는 항상 동네에서 가장 손이 빠른 젊은 여성 들이 선다. 내가 처음 모내기를 나가니까 내 양 옆에 동네에서 가장 손이 빠른 젊은 여자들이 섰다. 내가 있는 쪽으로 올 때는 천천히 오고 반대편으로 갈 때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손을 움직여간다. 펑크가 날락 말락하게 간격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논한 배미를 다 낼 때까지 허리 한번 펴보지 못 한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다. 다음날 허리가 아파서 간신히 일어났다. 그다음 날도내 옆에는 동네에서 가장 손이 가장 빠른 젊은 여성들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다른 자리로 옮기면 다시 쫓아와서 내 양 옆에 선다. 며칠 그렇게 보내다 보니 내 손도 조금 빨라졌고, 이력도 생겨서 그런지 괜찮아졌다.

농사일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신고식을 호되게 시킨 것이다. 봄에 가래질을 할 때는 처음 일을 배우는 사람을 항상 논 뚝 위에 서게 한다. 그리고는 장대잡이는 가래를 푹 꽂아댄다. 위에서 가래 줄을 있는 힘을 다해 간신히 잡아당긴다. 하루 가래질을 나갔다가 다음 날은 못 일어날 정도로 허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끊어질 듯 아파서 일을 나가기로 했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가래질이 너무 힘이 들어 우리 논의 가래질은 나 혼자서 하기로 하고 지게에 쟁기를 얹고 집에 있는 소를 몰고 논으로 나갔다. 한번도 논갈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소를 끌고 들로 나가니까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소는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지 않고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다. 소고삐를 잡고 두들겨팬 후에 다시 시작해도 소는 계속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한참 동안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쉰 일(소를 이용하여 논이나 밭을 갈거나 쓰레질을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소가 가려는 방향이 맞는 방향이니까 소가 가려는 방향대로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야! 이 사람아! 소가 가려는 방향이 맞는 거야. 소는 오랫동안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자기가 갈 길을 알고 있으니까 그 방향대로 가려고 하는 거야. 소가 가려고 하는 방향대로 가면 돼.”

일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애꿎은 소만 혼낸 것이다. 소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을 위해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고도 주인을 잘못 만나 두들겨 맞기만 한 것이다.

가을철 타작을 할 때 가마니에 벼를 담는데 두 가마만 작대기로 쑤셔서 담는다. 벼를 다 담고는 벼를 지게에 지고 날라야 하는데 어느 날은 한 사람이 두 가마씩 지고 가자며 작대기로 쑤셔 담은 벼가마를 내 지게에 얹었다. 내가 지게질이 서투르니까 두 사람이 양옆에서 들어 주어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지만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몇 발짝 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함께 일하던 마을 선배들이 웃는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일부러 두 가마니만 작대기로 쑤셔서 담은 거다.

내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은 기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농촌의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나는 퇴직한 후에 고향에 내려가 다시 농사를 지을 생각이다.

지금은 손으로 모내기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앙기로 모내기를 하는 시대로 변했다. 낫으로 벼 베기를 하고 발로 궁글통을 밟으며 타작(벼를 탈곡하는 행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벼 베기와 탈곡을 동시에 하는 콤바인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옛날의 그 정취를 다시는 느껴 볼 수 없겠지만 많은 농사를 짓기보다는 내가 먹을 양식은 내 손으로 직접 재배하여 먹고 싶다.

그리고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황토 온돌방을 만들어 놓아 고향을 찾는 친구들이 부담 없이 하루 쉬고 갈 수 있게 하고 싶다. 산에 나무가 울창하여 들어가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면서 땔감을 구하면 산도 가꾸고 어릴 때 군불을 때면서 느끼던 맛도 느낄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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