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픽사베이

 

 

 

지금은 개인정보 때문에 이력서나 각종 서류에 본적을 기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만나는 사람들 중에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남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뭘까? 우리나라는 큰 나라도 아니면서 오래전부터 지역감정의 골이 깊다. 때로는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서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저 사람은 영남이다, 저 사람은 호남 이다, 저 사람은 충청도다”하는 소리를 많이 한다. 영남 사람은 이렇고, 호남 사람은 저렇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서로 편을 가르고 서로 갈등을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큰 나라도 아닌데 왜 지역갈등이 일어날까?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지역적인 성향이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시·도지사 선거, 도의원 선거, 시·군·구청장 선거, 기초의원 선거에서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이용하여 한 표라도 더 받으려고 선거 홍보물에 출신지를 표시한다.

고향이라고 하는 곳은 살던 곳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라고 지금도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에겐 고향이 없다. 그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토박이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어렸을 때 살았던 곳, 정이 들었던 곳, 이따금 그리워지는 곳이 고향이 아닌가.

사람들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고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향우회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먼이국땅에 사는 사람들은 살았던 나라만 같아도 금방 친해지고 가까 워진다고 한다.

왜 고향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 편을 가르고 갈등을 가져야 하는 가? 사전에 고향이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지 의미를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자기가 태어난 곳,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고 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난 두말없이 용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용인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곳은 아니다. 사전에 자기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고 했으니 용인은 내가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곳에서 농사도 한 5년 지었으며 공무원 생활도 그곳에서 시작하여 4년을 근무했으니 나의 고향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용인은 고향의 두 번째의 의미인 조상대대로 살아 온 것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 비봉리다. 이미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곳은 북한지역이라 가 볼 수도 없는 곳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의 고향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단지 어릴 때 아버지의 고향은 삼팔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삼팔선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임진강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셨다. 지도에서 보면 황해도 연백군이 38선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아 38선 바로 위가 아버지의 고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거나, 경기도에서 태어났고 경기도에서 자랐음에도 조상이 살아왔던 곳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대답한다. 특히 선거에 나가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지역감정을 이용하여 확실한 표를 확보 해보자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학력 까지 모두 선거공보에 기록한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동문들의 표를 한 표라도 더 얻어 볼 생각에서 말이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도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향으로 생각하는 태어나서 자란 곳 용인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의미의 고향보 다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향을 마음속에 그리워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고, 추억이 있고, 정든 곳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누가 어느 지역 출신이니까 그 사람을 찍어야 하는 이유에서, 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때로는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고 부모님의 고향을 내 고향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나는 용인에서 태어나 용인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용인에서 농사도 5년 동안 지었다. 또한 용인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4년을 근무했으니 내가 태어난 용인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우리 아이들은 수원 에서 태어났고, 몇 번 이사를 했으니 어느 곳을 고향이라고 할 수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중에 고향이 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을 심어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심어주지 못했지만 나는 퇴직한 후에 시골로 내려 가서 손자 손녀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는 도시로 가더라도 어릴 때는 시골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정이 드는 곳이 있겠지만 그래도 성냥갑 쌓아 놓은 곳 같은 도시를 고향이라고 부르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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