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질서과 개인 자유의지의 갈등은 필연.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 관행을 바꾼다

어느 공동체든 고유한 질서가 있는 법이고, 그 질서와 구성원의 자유의지 간의 갈등도 반드시 있는 법이다. 질서와 갈등하는 자유의지 둘 중의 어느 것도 절대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율해 나가야 하는 것이 공동체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학내 군기’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질서임에 분명하다. 대학(大學)과 군기(軍氣)라는 단어의 조화부터가 문제적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존재 목표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늘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에 구성원 간의 갈등 조정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으며, 결정에 따른 책임도 엄청나므로 철저한 역할 배분과 상명하복의 질서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군대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조직인 소방, 경찰, 의료 업무 등의 조직에서 다른 조직보다 더 엄격한 ‘군기’를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 원리에서 보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한 공동체인 대학은 세상에서 가장 군기와는 거리가 먼 조직이어야 한다. 공부하는 자는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자이며, 그런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토론할 때 학문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학’ 내에 ‘군기’가 만연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우리 대학이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증명하는 현상이라 본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더 이상 자유로운 정신으로 세상을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기술과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곳에 불과하며, 요즘 젊은이들에게 ‘취업 전쟁’은 진짜 전쟁과 비교해도 그 위기감이 덜하지 않은 과정이니, 어쩌면 대학이 군대처럼 되어버린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사실 우리의 현대사가 언제나 전쟁 아니면 전쟁 같은 날들이었기에 대학생들에게도 학문에 대한 탐구보다는 전쟁에 앞서기를 독려해 왔던 것 같다. 00학번인 내가 대학생활을 할 적엔 큰 전쟁이 막 끝나가던 시대였다. 우리 전 세대의 대학생들은 민주화운동의 투사였다. 30여년 군부독재정권을 상대로 진짜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경험에서 나온 자부심과 그를 바탕으로 한 빡센 군기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목숨 건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학번 학생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그렇게 외치면서도 정작 학생부 활동이나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너무도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선배들의 모순된 행동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전쟁’ 경험에서 나온 ‘군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 과는 학생운동 전통이 깊어서 다른 과보다 군기가 강한 편이었고, ‘학회’라는 동아리에 모든 신입생들이 강제 가입되어 교육을 받으며 군기를 잡혀야 했다. 사실 교육 내용은 좋아서 처음에는 열심히 참석했지만 갈수록 강제적인 분위기에 회의가 들었다. 물론 모든 학내 군기가 그렇듯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선후배간에 끈끈한 관계도 쌓고, 행사와 전통도 이어가곤 했다. 학회와 학과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는 친구들은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친해지며 나름 즐거운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래도 다른 일이 더 중요하고 그런 활동을 원하지 않는 학생에게까지 무조건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배들의 카리스마가 워낙 강하고, 속은 몰라도 모두가 일단 따르는 분위기였으므로 누구도 이탈을 시도하긴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학회를 뛰쳐나온 게 바로 나였다. 선배들과 동기 모두가 모여 있는 앞에서 뭔가에 욱해서는 “저 이제 안 할래요”라고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용기를 낸 것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그렇게 엉겁결에 튀어나간 이래 수많은 동기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고, 선배들은 그 물결을 막지 못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이 참고 있었지만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 학번 이후로 학회 조직은 와해되었다. 개인의 일탈이었지만 당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음 해에는 우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비운동권 출신이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이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고 ‘반항아 1호’로서 내겐 그만한 대가가 따랐다. 선배들에게 ‘미운 털’이 박혔고 선배들과 친한 동기들에겐 욕을 먹었고, 과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내 입장을 설명할 채널이 별로 없었으므로 오해도 많이 받았고, 속상해서 집에 와 혼자 울기도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 자신의 문제와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고, 그 과정에서 조직 내의 역할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들이 생겼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내게 소중한 자산이다. 반대로 졸업한지 15년이 넘어가는 지금 돌아보면 그때 ‘군기’로 맺어진 관계를 통해 실제 인생에 도움을 받은 케이스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졸업한 뒤론 선배고 후배고 다 자기 살기 바쁜 사회인이 될 뿐이다. 강제로 맺은 ‘의리’는 얼마 가지 않는다.

 

요는 학내 군기는 사회적인 현상이므로 전적으로 개인을 탓하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답답할 때는 눈을 들어 좀 더 멀리 보라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젊은 시절의 낭만과 일탈은 고사하고 그 나이 때 너무도 당연한 작은 실수마저 용납되지 않는 팍팍한 처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처음으로 자기 행위에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성인’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인간관계와 조직생활에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 보면 대학생활은 인생에서 아주 작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모두가 서툰 게 당연하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둔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압박 받는 상황이라도 남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는 용납 받을 수 없다. 명백한 폭행은 법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 대원칙만 따른다면 아무리 갈팡질팡하고 실수하고 갈등을 빚게 되더라도 괜찮다. 공동체도 중요하고 개인도 중요하다. 단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올바른 질서를 정립하려고 노력해 봐도 좋고, 난 관계와 공동체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 혼자 알아서 해보겠다고 해도 좋다. 정답은 없다. 내 선택에 따를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대가를 치를 각오를 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다소 충돌이 따르고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라도, 그래야 진짜 경험과 관계가 남게 된다. 나라는 인간이 공동체 질서와 깊이 만나보는 실험이라고 보면 된다. 대학생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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