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저 나쁘기만 한 걸까?

매년 학기 초가 되면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단어가 있다. 학내군기. 조금 더 수준 있게 ‘똥군기’라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 학내군기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학교 안을 뜻하는 ‘학내’와 군대의 기강을 일컫는 ‘군기’, 이 두 단어의 의미가 더해진 합성어이다. 학교에서 군대와 같이 기강을 잡는 행위와 이를 둘러싼 여러 부수적인 상황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로 볼 수 있다. 일단 인터넷 검색창에 ‘학내군기’를 키워드로 검색을 돌려보면, 거의 대부분 부정적 뉘앙스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진다. 기사들이 다루고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 배경은 모두 대학, 그리고 기사가 쏟아지는 시기는 3월에서 4월에 집중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왜 대학에서 기강을 잡는 행위가 사회적 문제가 된 걸까? ‘학내’에서 학교를 뜻하는 ‘학’은 비단 대학만을 의미하지 않고, 초, 중, 고등학교도 포함하는 의미일 텐데, 왜 대학이 특히 문제가 되었을까? 대학이 다른 학교급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초, 중, 고 학생들은 정해진 교과과정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공부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학업뿐 아니라 생활까지도 밀착하여 지도하는 교사들과 함께 보낸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교과과정을 스스로 구성하고 학교수업은 일상의 일부이며, 전공교수는 학업에 대한 지도를 주로 제공할 뿐 성인이 된 대학생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진다.

 

 학 신입생이 되는 3월은 이렇게 초, 중, 고 12년 동안 정해진 체제 내에서 누군가의 밀착된 지도를 받아온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성인으로 변신하는 무대에 서는 시점이다. 이렇게 자유가 당연한 그 순간과 ‘군대 같은 기강’은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기강’이란 한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규율과 법도를 의미하는데, 이를 대학생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면 조직은 소속된 학과가 될 것이고, 규율과 법도는 학과의 운영을 위해 정한 규칙일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자유로운 행동을 기대하는 시점과 이 기강이 적용대상이 되는 시점이 같다는 것이 첫 번째, 이 규율과 법도를 정하여 운영하는 주체가 학과 선배라는 점이 두 번째, 그리고 이 기강이 운영되는 방식이 ‘군대’스럽다는 것이 세 번째 문제이다.

학내군기는 단순한 폐해로만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것이고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임에도 지속적이고 보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 이는 학내군기가 쉽게 없앨 수 없는 필요에 기인하고 있으며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의 입장을 함께 고려해야 문제의 본질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흔히 가해자로 인식되는 선배의 입장을 살펴보자. 학내에서 군기를 잡는 주체는 학과 운영을 주도하는 선배 특히 학생회 임원이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역할에 관계없이 모든 선배들이 군기를 잡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 해당된다). 임원들에게 부여되는 주요 역할은 1년 동안 학과 소속 학생들과 함께 학과에서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다. 이는 작게는 신입생 환영회나 학과 엠티, 주점에서 시작하여 크게는 학술제나 공연 등 정례적으로 치르는 행사까지 망라한다. 이러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일손과 참여자가 필요한데, 3, 4학년은 취업과 학점에 신경써야하므로 일단 열외이고, 1학년 신입생과 2학년 학생들이 주된 동력이 된다.

최근 대학이 학생들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인식의 확산으로 신입생들의 학과에 대한 소속감과 존중, 유대감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신이 진정 원했던 학교의 학과가 아닌 소위 점수에 맞춰 입학한 학생들은 당연히 소속 학과에 대한 애정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신입생들은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열망이 누구보다도 큰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학과 행사 준비에 시간을 내 달라고 설득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과 행사는 학생회 임원이 주체적으로 열의를 가지고 기획하여 준비하는 행사라기보다는 그냥 지금까지 쭉 해 왔으니까 하는 일, 또는 학과에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하는 일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왜 이런 행사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정당한 명분과 필요성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설득을 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또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쉬운 대안을 선택한다. 바로 선택권을 없애버리는 방법이다. 1, 2학년 때 모두가 당연히 참여하는 것으로 학과 행사의 성격을 규정해버리면 굳이 설득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실행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예외를 두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참여를 이끌어 낼 때 유지해야 할 중요한 슬로건은 ‘모두가 하니까 너도’이다. 이런 상황에 한두 번 사정을 봐주면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당연히’라는 명분에 균열이 생기게 되고 점점 벌어지는 틈새를 막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애초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상황을 만들어두면 이런 저런 복잡한 변수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효율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단체생활에서 효율성이란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므로 그렇게 보면 나름 이해가 되는 사정들이다.

 

 

 

무엇보다 군기를 잡는 대학 선배들도 대부분 그리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들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자. 태어날 때부터 매력도 레벨 99를 찍어 관계나 사회성에 특화된 속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학교 2, 3학년 때 나와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가진 다수를 설득하여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더불어 학생회 임원 임기는 대부분 1년이다. 1년이면 긴 시간 같지만 함께 일할 사람을 찾아 조직을 구성하고 몇 번 합을 맞춰 보면 이미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다가온다. 연속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1년 동안 구성원들 대다수를 설득할 만한 명분을 세워 함께 일할 조직을 꾸리고 일정하게 좋은 성과를 내는 과업은 원숙한 경험을 가진 역량 있는 지도자에게도 힘든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미션을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20대 초반의 학생이 훌륭하게 해낸다는 것은 당연히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런 어려운 일을 맡았을 때, 나름대로 임기 동안 선방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전통적인 방법을 택해 리스크를 줄이는 길을 선택하기 쉽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선택권을 없애는 전략으로 ‘모두가 하니까 너도’라는 명분을 살려주는 고효율 조직운영 방식이 있다. 바로 군대의 조직운영 방식이다. 이 방식은 큰 고민 없이 차용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일단 대학생 중 다수(즉 최소 군대 다녀온 남학생의 수)가 밀도 있게 체득하고 있는 조직운영 방식 중 하나여서 많은 설명 없이 실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단기간에 억지로 무엇인가를 해내야 하는 상황에 높은 호환성을 지닌다는 특성도 있다. 요약하자면, 역량이 부족한 또래가 같은 또래의 힘을 빌릴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고 큰 고민 없이 운영할 수 있는 나름 효율성 있는 방식이 바로 군대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군대방식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용인술, 카리스마, 행동력 등 운영하는 사람의 스킬과 노하우도 상당히 많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아무나 쉽게 사용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표면적인 요소만 차용했을 경우 똥군기로 전락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신입생이 선배들 앞에서 학번을 대며 큰 소리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은 군대 선임에게 관등성명을 대며 경례하는 이등병의 행동을 베낀 것이고, 신입생에게 복장이나 두발 또는 행동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였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를 완화하는 방식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열외조건을 늘려주는 제도를 따른 것이다. 왜 군대에서 이런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이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할 때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보이는 요소만 차용하는 것이 말 그대로 똥군기를 낳는 주된 원인이 된다.

학내군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언급되는 또 하나의 주체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이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교수들에게 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단 대학생들은 모두 법적 성인이고, 학생회는 대부분 학생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운영하는 자치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통제는 불가능하다. 교수가 직접 학생들을 대면하는 시간도 중고등학교에 비해 짧고, 법적 성인이므로 직접적인 생활지도를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단적으로 말해 하지 말라고 교수가 이야기를 해도 학생들이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 입장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손쉬운 방법은 문제 일어날 만한 상황 자체를 제도적으로 회피하는 것뿐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이를 아예 없애거나,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약화시키는 것이다(원래는 2박 3일 일정인데, 이를 당일 일정으로 바꾸는 방식). 한계가 명백하나 그 이상의 조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니 논의가 길어졌다. 요는 학내군기는 올바른 대학문화가 아니고 또래 사이에 기강을 잡는 행위 또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학내군기를 단순히 ‘나쁘고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만 판단하기에는 나름의 복잡한 이유와 체제적인 문제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선배가 나빠서, 그리고 교수가 무관심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인식하기보다 각 주체별로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선택한 결과의 조합으로 발생하는 체제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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