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부부가 있고 형제들이 있습니다. 형, 동생, 누나, 이 세상에서 이런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이 관계에 반드시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부부가 있고 형제들이 있습니다. 형, 동생, 누나, 이 세상에서 이런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이 관계에 반드시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또 부부는 평생 함께 살아가는 관계입니다. 비록 남남이 결합되어 함께 살아가지만 이 관계처럼 신비한 관계도 없습니다. 이 관계를 하늘이 맺어진 관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부부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요소는 사랑입니다. 가족 가운데서 또 소중한 사람은 부모입니다. 부모처럼 소중한 존재도 없습니다. 부모는 나를 낳아준 생명의 공급자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소중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자녀들이 부모를 무거운 짐처럼 생각하고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노인들이 수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 이 시대는 병든 시대입니다. 세상에 부모처럼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부모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오늘 사람들이 너무나 모릅니다. 그 팽팽했던 얼굴이 흉하게 주름살이 지고, 그 예쁘던 몸매가 엉망이 되고, 꽉 찼던 뇌가 반으로 줄어 치매가 생겨서 분별력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한 번 눈여겨보십시오. 이런 부모를 귀찮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은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모르다가 언제 알게 되는가 하면 돌아가신 다음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부모님이 생존하여 계실 때 효도하십시오. 정성을 다해 공양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그것이 자식의 도리이고 사람의 도리입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부부가 있고 형제들이 있습니다. 형, 동생, 누나, 이 세상에서 이런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이 관계에 반드시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 효자동 이야기 >

옛날 효자동에 홀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사는 아들 내외가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데리고 잠을 자다가 그만 깔아뭉개서 어린 손자를 죽게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효자 아들은 죽은 아이를 조용히 안고 나오면서 그 죽은 아이에게 “이 불효막심한 놈, 네가 죽었으니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느냐”며 아이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잠버릇이 험해서 깔아뭉개도 죽지 말아야지 네가 죽어서 할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느냐, 너 때문에 아버지께 불효하게 되었다”며 따귀를 때렸다는 것입니다. 따귀를 얻어맞은 아이가 너무나 놀라서 재채기를 하더니 죽은 아이가 깨어났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임금님이 이 효자에게 상을 내리고 그가 사는 동네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부모공경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공경의 대상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영의 공급자시고 내 부모는 육신의 공급자이십니다. 그래서 부모는 공경의 대상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속사역의 완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 “여자”라는 호칭은 “구나이”라는 말로 원래 여인을 향하여 최상의 존경을 표시할 때 쓰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왕후나 여왕에게 쓰이던 존칭어였다고 합니다. 즉 이 말은 여인을 향한 최고의 존칭어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런 말씀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는 갈보리 십자가의 상황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셨고, 그러기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곧 내 옆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바,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하나님 사랑, 즉 이웃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까? 부모공경, 부모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절정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 자체도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순종하신 것이고,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심으로 이웃사랑을 통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신앙이 좋고, 믿음의 행위를 잘한다고 하여도,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다 가짜입니다. 우리가 진정 부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다 거짓말입니다. 비록 우리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니 우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아셔서, 나와 같은 귀한 효자 자녀를 주실 것이고,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부모님들을 공경할 수 있습니까?

(1) 부모님의 필요를 공급해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닌 부모님들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셨고, 그 어머니의 필요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이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처럼 모셨고, 그가 후에 에베소에서 목회를 할 때도 마리아를 모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효는 말로만의 효가 아니라 부모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채워주는데까지 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효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모님의 필요를 채우고 공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먼저 부모님들을 부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부모님께 입술로만 부양을 하려고 하지 물질적인 부양은 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은 젊은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려고 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의 부모에 대해서 생각하고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만큼 우리 부모님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 부모의 필요를 공급하는 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고 부부가 있고 형제들이 있습니다. 형, 동생, 누나, 이 세상에서 이런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이 관계에 반드시 우애가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의 수준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더욱 귀한 봉양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들을 진정 기쁘게 해 드리려면 그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부모님들과 늘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비록 자신은 이제 떠나지만, 자신을 대신하여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어머니와 평생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님들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더 나아가 부모님의 필요를 채우고, 부모님과 함께 함으로 기쁨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귀하게 보시고, 약속하신 계명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다윗은 여덟 명의 형제들 중에 말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일했습니다. 들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며, 밤잠을 설치며 양을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효도입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책임 있게 살아가는 삶이 바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효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택해서 마침내 그 나라의 백성을 책임지도록 목자장으로 삼고 임금으로 삼으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효성스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사랑받았고,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색동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사랑을 받았던 것은 사랑받을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룻은 아무 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 낯선 이국땅으로 주저하지 않고 갑니다. 그랬더니 룻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그의 자손에게서 다윗이 태어나고 그의 혈통에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고 아무나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부모 공경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불러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며 효를 다하는 자에게는 “내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실현됩니다. 이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도요한입니다. 이 사도요한은 12제자들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알고 끝까지 효를 다하였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복으로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부모님을 공경했던 것처럼 부모님을 공경하십니다. 부모님의 필요를 채워 드리고, 부모님을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함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글 : 일산명성교회 문성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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