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대 취약점 중 하나는 “습관적으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삶의 수단들인 돈이나 건강이나 공부나 대학, 직업 등이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무리하게 되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내가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지 모른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목적을 모른다면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대 취약점 중 하나는 “습관적으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삶의 수단들인 돈이나 건강이나 공부나 대학, 직업 등이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무리하게 되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내가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지 모른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목적을 모른다면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갖고 태어났고, 또 그 목적을 위하여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 1:6-7) 그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택정하셔서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향한 특별한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시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우리가 목적에 이끌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빈 들에서 미리 준비하십시오. 우리가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삶을 살려면 첫째로, 빈 들에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이 빈 들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을 보면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빈 들로 나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원래 그는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30세 때까지 빈 들에서 살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목적을 위해 준비했던 것입니다. 빈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준비하는 곳입니다. 모세도, 바울도, 빈 들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인생의 빈들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자리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빈들에서 미리 준비해야합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메시지처럼 주님이 오실 길을 내는 것(요 1:3-6)은 많은 희생과 고통을 동반하지만 우리들이 이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고 마음의 길을 준비할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실 길이 예비됩니다. 올해 한해는 여러분의 빈들에서 미리 준비함으로 주님의 인정받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대 취약점 중 하나는 “습관적으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습니다. 예를 들면 중요한 삶의 수단들인 돈이나 건강이나 공부나 대학, 직업 등이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무리하게 되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내가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지 모른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목적을 모른다면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2)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목적에 이끌려 살려고 하면 셋째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타락한 세상 속에서 진리를 선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굉장히 심한 책망까지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례 요한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뒤로 하고, 적당히 귀에 달콤한 이야기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이러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3)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삶을 살려면 셋째로,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가 백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세례 요한도 딴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거짓으로 자기가 메시아라고 할 수도 있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조직하여 뭔가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막1:3)로 만족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단호히 말합니다.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요한복음 1장 23절에서 세례 요한은 자기를 단지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말씀을 증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자꾸만 주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예수께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와서 “당신은 왜 세례를 주느냐?”고 물을 때도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다.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치 못할 존재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3장 30절을 보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며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 요한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빈 들에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오직 주님만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그는 천사의 예언처럼(눅 1:15), 주님으로부터 ‘여인이 낳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큰 자’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여러분 각자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처럼 그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삶을 살아, 주님께 큰 자라 인정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문성욱 목사

저작권자 © 한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