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붙었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종교개혁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이 종교개혁일 이었습니다. 1517년 루터는 카톨릭교회의 공로주의 앞에서 오직 믿음으로, 관습과 전통 앞에서 오직 성경으로, 인간의 선한 행위에 의해 결정되는 구원 앞에서 오직 은혜를 외쳤습니다.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은혜 Sola Gratia를 슬로건으로 삼아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
인간의 첫 작품은 옷이었다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 한 다음 인간은 나뭇잎으로 제일 먼저 옷을 입어 자기의 부끄러움을 가렸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의복이 중요합니다. 우리 집이 어떤 집인지 집을 가지 않는 한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옷을 못 입으면 금방 내 가난과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옛날에는 성공하면 계급에 따라 옷이 달라졌습니다. 임금님은 즉위식에 구장복이라고 하는 아주 장엄한 옷을 입었습니다. 평상시에 시무복은 곤룡포 혹은 용포라고도 부르는 붉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어전에 앉아서 직무를 보셨습니다. 여인들도 왕족들은 금박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의 단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벌을 받고 땅에 내려온 미하일이라는 천사가 한 구두수선 집에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건장한 군인 장교가 최고급 가죽을 가져다주면서 구두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처음 신어도 십년을 신은 것같이 편안하고, 십년을 신어도 새 것 같은 구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구두수선공은 그런 신발을 만들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그 집 종업원으로 와
중국의 석학이며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임어당의 저서「속(續)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장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큰 나무에 날개가 무려 일곱 척이나 되는 큰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새를 잡을 마음으로 활을 들고 가까이 갔는데도 움직이지 않아서 살펴보았더니 이 큰 새가 바로 눈앞에 있는 버마제비라고 하는 먹이를 먹으려고 거기에 몰두하고 있더랍니다. 또 버마제비를 보니까 눈앞에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밤나무 숲 주인이 장자가 도
新 경영마인드 365(윤은기 저)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몇 마리의 벌과 파리를 투명한 병 속에 함께 집어넣고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병의 마개를 막지 않고 열어 놓은 상태에서 병의 바닥은 빛이 비추는 밝은 창 쪽으로 하고 열린 부분은 어두운 쪽으로 해서 병을 뉘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벌은 바닥인 밝은 방향에서만 출구를 찾다가 끝내는 지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이곳, 저곳을 막 돌더니 2분도 되지 않아서 반대쪽의 입구로 나가버렸습니다.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아십니까? 벌은 파리보다 머리가
[슐로모 브레즈니츠]라는 심리학자가 4개조의 군인들에게 20km를 행군하게 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조사했습니다. 1조에게는 미리 20km의 행군거리를 예고하고 5Km마다 남은 거리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2조에게는 단지 먼 거리를 행군한다고만 알렸습니다.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고 말했다가 14km지점에서 20km행군으로 변경했습니다. 반면 4조에게는 25km행군한다고 말한 후 14km지점에서 20km로 단축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20km행군이라는 정확한 거리와 중간에 남은 거리를 알고 행군한 1조가 스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내 마음대로 다 잘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도움이 올까 해서 나름대로의 창을 열고 도움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세상의 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시험과 환란과 어려움이 다가옵니다.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에 붙들려간 소년입니다. 이 소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바벨론 나라의 총리까지 됩니다. 총리가 되어서도 그는 기도의 줄을 놓지 않습니다.그러나 그에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법률을 세워 앞으로 삼십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면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삶은 진행되고, 기다림 속에서 인도되고, 기다림 속에서 성취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기다림이란 것도 연령과 환경에 따라 다양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갓난아이는 어머니가 젖줄 때를 기다리며 인생을 시작합니다. 유치원 아이는 학교 들어갈 때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청년은 운전 면허증을 딸 때를 기다립니다. 군인은 제대할 때를 기다립니다. 결혼할 처녀, 총각은 결혼할 날을 기다립니다. 입학시험을 치룬
인류의 불행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것도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순종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으로 인하여 인류의 불행한 역사는 역전되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에게 미친 파괴적인 힘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순종은 인류에게 그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면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이스라엘에서는 파종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봄에 씨를
탈무드에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궁궐 안에 매우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라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과일나무를 지키기 위해 경비원 두 사람을 고용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고, 또 한 사람은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두 사람은 왕의 명령을 받고 나무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은 그 과일을 따먹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한 끝에 한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시각장애자가 자기 어깨 위에 지체장애인을 태우는